죽은 자는 언제까지 산 자를 살릴 수 있을까?

- 1980년 5월의 광주를 반복 소환하는 방식이 만드는 한계

by Minseung Kang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은 특정 지역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계엄령 확대와 군부 쿠데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사격과 폭행은 국가가 헌법적 의무를 중단하고 특정 집단을 ‘위험 요소’로 규정했을 때 나타나는 통치의 양태를 드러냈다. 사건 이후 광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저항과 불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재현 방식과 소비 맥락이 변화했다. 기념식과 교육, 문화 콘텐츠를 통해 반복적으로 호출되었지만 호출 빈도와 사회적 이해의 심화가 반드시 비례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2007)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개봉 당시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지만, 평단에서는 “그날을 단지 연인과 가족의 죽음을 통한 눈물의 서사로 한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주인공의 사적 관계를 중심에 둔 서사는 관객이 쉽게 감정이입하도록 설계되었지만, 국가 폭력의 구조적 문제는 주변부로 밀려났다. 제작비 회수와 흥행을 전제로 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정치적 분노보다 폭넓은 공감이 가능한 ‘보편적 슬픔’이 안전한 선택이 된다. 이때 광주는 위험한 정치적 주제가 아니라, 눈물과 공감을 생산하는 배경으로 가공된다.

〈26년〉(2012)은 피해자와 유가족이 전두환을 응징하는 가상의 서사를 제시했다. 제작 과정에서 정치적 압박으로 수년간 지연되었고, 민간 모금으로 완성됐다. 영화는 응징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축했으며, 피해자 개인의 동기와 정서를 주요 동력으로 삼았다. 이러한 복수 서사는 강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지만, ‘그날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에는 닿지 못했다. 〈택시 운전사〉(2017)는 서독 기자 위르겐 힌트페터의 시선을 매개로 사건을 재현했다. 이 시선은 참상의 전모를 일정 부분 절제하며 외부인의 관찰과 해석을 결합시켰다. 중심인물 만섭은 직업적 역할에서 출발해 사건에 개입하게 되며, 그의 선택은 영웅적 의무감이 아닌 생존과 가족 안전에 기초한다. 개인의 일상적 동기가 변화의 계기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나 제도적 맥락은 부차적으로 다뤄졌다.

세 작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광주가 ‘정치적 사건’보다 ‘감정 서사’의 배경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감정 중심 서사는 폭넓은 관객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정치적 반발 가능성을 낮춘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국가 폭력의 기제나 민주주의의 제도적 조건에 대한 분석보다는, 감정의 경험을 주요 소비 대상으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반복 가능한 서사 포맷 속에서 재생산되고, 기억은 감정 중심의 재현을 통해 순환된다.


이러한 재현이 반드시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왜 지금 광주를 다루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광주는 얇아진 의미로 소진된다는 점이다. 재현은 단순 반복이 아니라, 현재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광주는 끊임없이 호출되지만, 그 호출은 안전한 감정 이벤트로 고정된다. 전두환의 사망 소식이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 전해졌을 때, 사회는 다시 분노와 허탈감을 느꼈지만, 이 감정이 구조적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윤석열 정부 시기의 정치 환경 속에서 계엄령, 반역, 쿠데타, 탄핵 같은 키워드가 재차 호출되었지만, 자본의 논리는 이념과 무관하게 주목과 수익을 쫓는다. 덕분에 젊은 세대까지 광주를 접하게 되었지만, 스펙타클화된 재현이 반드시 비판적 학습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위험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건을 다룬다는 명분 아래 그것을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표어를 외치고, 기념일에 모이며, 잘 알려진 서사를 되풀이하지만, 그 과정이 반드시 본질을 재발견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학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감정 구조 속에서 사건은 ‘소비 가능한 역사’로 자리 잡는다.


작가 한강의 사례는 광주 재현의 소비 구조를 다른 층위에서 보여준다. 그녀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014)는 1980년 5월 광주와 그 이후의 삶을 다층적 시선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작품은 실존했던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계엄군의 진압 과정에서 숨진 열다섯 살 소년과 그 주변 인물들의 내면과 시간을 교차시키며 구성된다. 이러한 문학적 재현은 단순한 허구 창작과 달리, 역사적 참사와 개인적 서사의 결합을 통해 독자에게 ‘체험된 과거’를 제공한다. 이 소설은 이후 20여 개국에 번역·출간되었고, 『Human Acts』라는 제목으로 영미권에서 주목을 받으며, 해외 독자들에게 5·18의 존재와 성격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됐다. 그러나 이 과정은 창작 행위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반복 호출하고 재현하는 행위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문학의 형식 안에 보존하는 증언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그 사건을 문화·출판 시장 속에서 유통시킨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이 보인, 축하에 일정한 거리를 둔 태도는—그 이유를 단정할 수 없더라도—그 영광이 단순한 개인적 성취의 감정으로 환원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증언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그 증언이 가져다준 국제적 찬사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긴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상 이후의 사회적 반응은 이러한 긴장을 완전히 무시한 채 진행됐다. 시상식 직후부터 언론과 대중은 연일 축하와 찬사를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그 축하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표면적으로는 작가 개인을 향한 경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 문학계의 국제적 위상을 확인하고, 국가·사회가 스스로를 긍정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이러한 현상은 광주를 포함한 많은 역사적 사건의 재현과 소비에서도 반복된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라는 표어가 기념과 재현의 최종 문구로 제시되지만, 그 지속이 반드시 사건의 본질 재인식이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잊지 않기’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소비하는 안정된 방식으로 귀결되며, 사건은 탈정치화된 감정 이벤트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재현은 본질을 확장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적 동원과 자기 확인의 매개가 되고, 사건의 복잡성과 구조적 함의는 점차 주변화된다.


결국 논의는 한 점으로 수렴한다. 지금 우리는 광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그것은 기억의 계승인가, 아니면 감정의 소비인가. 재현의 형식, 감정의 구성, 자본의 흐름, 정치적 맥락, 그리고 그 사건과의 개인적 관계와 윤리적 태도까지 모두 이 질문의 내부에 포함된다. 이 물음은 다시 한 가지로 귀결된다. 죽은 자가 언제까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1980년 5월의 죽음이 여전히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면, 그 힘은 기념의 지속에서 오는가, 아니면 반복된 소비의 관성에서 비롯되는가. 살아 있는 기억은 변화와 재구성을 향한다. 그러나 소비로 전환된 기억은 예측 가능한 감정 반응과 안전한 서사 틀 안에서 순환하며, 결국 죽음마저 재현 가능한 장르로 고정시킨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비극은 현재를 변형시키는 힘을 잃고, 미래를 준비하는 능력마저 상실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스템은 당신의 선의를 증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