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는 어떻게 ‘국민 썅년’의 반열에 올랐나?

-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살펴본 ‘썅년’의 사회학

by Minseung Kang

무단으로 촬영장을 벗어나려는 정희란(이하늬)에게 신주애(방효린)가 달려와 따져 묻는다. “영화도 싫고 저도 싫으시잖아요. 그런데 영화를 왜 하세요? 그냥 밥벌이예요?” 선을 넘는 질문에 희란은 주저 없이 후배의 뺨을 후려친다. 주애는 이를 악물고 받아치듯 말한다. “선배님, 진짜 썅년이시네요.” 둘의 신경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애는 폴고(안길강) 선생의 드레스를 자기 멋대로 수선해 기자회견장에 입고 나타난다. 젖가슴을 훤히 드러낸, 그래서 세간의 주목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후배를 견딜 수 없었던 희란은 그녀를 불러 세워 따끔하게 혼내주려 한다. 그러나 주애는 무시하듯 자리를 피해버리고 희란은 나직이 중얼거린다. “이 썅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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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애마〉(감독 이해영, 2025)에서 주애와 희란이 최소한 한번씩은 주고 받았던 ‘썅년’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욕설의 발화가 아니다. 희란은 이미 충무로의 중심에 서 있는 배우였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당시 영화계에서 여성에게 허용된 자리는 희소했고, 그래서 ‘애마부인’이라는 캐릭터는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자리였다. 주애는 그 자리에 도전하는 신예로 둘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 구도 속에서 ‘썅년’은 구조적으로 설계된 경쟁과 적대의 언어다. 실제로 당시 영화산업 구조에서도 여성들은 몇 안 되는 스타의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했다. 1980년대 충무로에서 여성이 영화의 메인 캐릭터로 이름을 올린 경우는 손에 꼽았다. 한국영화연감(1985)에 따르면 1980년대 초 제작된 한국영화 300여 편 중 여성 단독 주연 영화는 8%에 불과했다. 이 희소성이 여성 배우 간 경쟁을 구조화했고, 갈등은 자연스럽게 ‘썅년’이라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렇다면 왜 ‘썅년’이었을까. 여성에 대한 모욕적 표현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썅년’이라는 단어는 압도적인 빈도로 사용된다. 우선, 이 표현은 본래 ‘쌍년’에서 비롯됐다. ‘쌍’은 조선시대에 하층민을 낮잡아 부르던 ‘상놈’에서 파생된 멸칭이고, ‘년’은 원래 단순한 여성 지칭 접미사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부정적 함의를 띠게 되었다. 지역 방언과 음운 변화를 거치며 ‘쌍년’은 ‘썅년’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이 단어는 계급적 멸시와 젠더적 멸시가 교차하며 축적된 욕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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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방송을 만들고 한참 동안 글을 써왔습니다. 세상의 틈, 구조의 이음, 기억의 균열 속에서 말을 붙잡고 문장을 견디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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