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배우는 것에 몰두하게 되고, 배운 것에 대한 성취감까지 맛본다면(예: 좋은 성적을 받거나, 자격을 취득하거나, 학위를 받는 등) 그 배움은 내 안에 커다란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나의 OO분야에 대한 지식은 이제 상당한 수준이군.'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 한편에 자리 잡게 된다.
적어도 올해(2020년) 초까지의 나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득 출근길에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의 나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라는 일말의 고려를 해보기 전까지는 더욱 그랬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한 분야를 10년 가까이 공부하면서 이제야 철이 들어가는(?) 것일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사람과 학문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해프닝들을 과거에는 잊어버려야 할 대상, 끊어내야 할 사람, 꼭 필요한 사람, 친해져야 할 대상 등으로 판단하는 데 사용했다. (물론 지금도 마음 한편에서는 몰래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부터 조금 다른 마음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항상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드는 이쁜 짓(?)만 할 수는 없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욕 나오는 짓을 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할 것인가?'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보는 상대의 결점은 대부분 철저히 나의 관점에서 해석된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반짝이는 개성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인정하기 시작한 작은 것은 이 부분이다. 내가 생각한 타인의 부분은 내가 판단한 것일 뿐,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답을 나 혼자 강하게 믿거나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나쁜 버릇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는 것이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나의 긍정적인 변화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영역은 심리학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나 또한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이 나이에 무언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열등감이 뒤 섞여 강력한 학습 동기를 이끌어냈다. 그 당시 난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틀린 길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몰두하고 있는 영역, 내가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최면을 걸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니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이론 중 하나를 고집하는 일은 다른 이론에 대한 무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무지를 인정하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변명으로 인간을 이해하는데 다른 방향을 선택한 사람들을 존중하지 못했다. '그 이론은 이런 부분이 약점이야. 내가 추구하는 이론의 약점이 OO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라는 이야기를 하기에 급급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마치 내가 그 이론의 선구자가 된 것처럼 그랬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는 세계일 뿐이다. 그 세계는 다른 모든 이의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다른 이론적 관점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을 듣는 것이 흥미롭다. 개인적 성장을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고집하고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론의 장점을 취하고 이해하며 통합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다. 진정 나를 찾는 내담자(client)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나의 제한된 관점에서 내담자를 이해하고 그것이 전부다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내담자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이라는 것을 믿는다. 작은 부분에서 더 큰 부분으로 시야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니깐.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이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데 중요한 것이 아닐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글을 쓰고 보니 이런 태도를 더욱 갖추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이 벅차오른다. 한층 더 성숙해져 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가 보다. 이런 생각이 바로 드는 걸 보니 아직 철들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