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꼰대인가?

꼰대이고 싶지 않은 꼰대가 전하는 글

by 마음슥슥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이다.

출처: 위키백과 '꼰대' 中



아침 라디오에서 '꼰대'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꼰대 같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들어봤다. 들었을 때 느낌은 참 묘했다. 뭔가 인정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반발심도 동시에 생겼기 때문이다. 묘한 단어다 꼰대라는 단어는.


꼰대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 중 내가 인정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경험치'라는 측면이다. 특정 분야에서 나는 나름 나를 인정한다. 그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나의 어조는 경험치가 적은 영역을 이야기할 때보다 커진다. 몸소 내가 체험한 것이니 추측성보다는 좀 더 직접적인 언어가 사용되는 편이다. 대표적인 영역이 교수 장면이다. 학생들 앞에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면 (마치 내가 대단한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한참이나 경험치에서 앞서 있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강의를 진행하며 목소리가 커지는 나를 바라볼 때면 '나도 꼰대구나.' 하는 문득 스쳐간다.


alexi-lamm-1176208_1280.jpg 잘 아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꼰대가 된다.


꼰대라는 단어를 듣고 내가 반발심을 느끼는 부분은 '타인에 대한 강요'라는 측면이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급격한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거쳐 달갑지 않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는 각각의 시대에 대응하는 세대(나이)와 이에 영향을 받은 서로 다른 관점들이 뒤섞여 있다. 심리학 영역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동양권을 집단주의(Groupism) 문화로 바라봤으며,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서양문화의 대표적 정체성으로 평가했지만, 현재 개인주의는 더 이상 서양의 것만이 아닌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문화와 개인의 고유성을 우선하는 문화의 충돌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강요'는 집단주의(공동체 의식)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집단주의 문화는 나의 안녕보다는 조직의 안녕을 강조하고, 자연스럽게 '나'의 자유는 줄어들고, 때로는 희생을 강요한다. 상담과 심리치료에서는 상담자의 이런 태도를 경계하는데, 이런 부분이 내담자의 자기 탐색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상담자의 강요는 내담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구나 혹은 바꿔야만 하는 것이구나라는 단편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어, 정작 자신이 그 생각을 어째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방해할 수 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자면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또 다른 꼰대가 되어 상담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겠다.


meeting-4784909_1280.jpg 라떼(Latte)는 풍미가 아주 뛰어나지만, '라떼는 말이야...'는 풍미가 아주 별로!일 수 있다.


새로운 세대와 예전 세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멈춤'이다. 나의 의견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그것을 상대에게 와르르 쏟아붓는 것은 피하고, 이것을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 이따금 설명충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한다. 과거 내 프로젝트 심사위원 중 한 명은 '의도를 전달하려면 초등학교 5학년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면, 상대는 나의 의도와 내가 왜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설명을 하고 난 뒤에는 꼭 상대의 의견도 들어본다. 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등을 들어준다. 내가 가진 방식을 강요하는 욕구(?)를 해소했으니, 상대의 욕구 또한 해소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충분히 들어준다. 이따금 나의 방식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아이디어가 상대에게서 나오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는 '너의 아이디어 엄청난데?! 그걸로 가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개뼉다구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들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만 개뼉다구 같은 생각이지 상대에겐 다이아몬드와 같은 생각일 수 있다. 존중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대 또한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children-593313_1280.jpg 서로에 대한 존중은 성공을 만든다. 일에서나 사랑에서나.


그렇다. 종종 나도 타인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고 나의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가 보다. (인정하기 싫지만.) 싫은 피드백이지만 유념해두지 않으면 또 다른 꼰대를 만나 호되게 당할지 모른다. 그 꼰대를 욕하기 위해서는 내가 꼰대가 되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과연 마음먹은 만큼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내 안의 꼰대를 완전히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한다.




*글의 주제를 추천받습니다.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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