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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Dec 15. 2022

스파이가 필요해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어느 중학교로 옮기자마자 인성부장이 되었다. 나름 곱상한 외모인데 철퇴를 휘두르는 인성부장이 될 줄은 몰랐다. 아무도 인성부장을 맡지 않으려 해서 전입자에게 순번이 돌아왔다는 전언을 들었다. 교감 선생님에게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내 얼굴을 보라고, 이 얼굴로는 학생들을 강하게 지도하기 힘들다고 재고해 줄 것을 요구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며 편견을 버리라는 말로 교감 선생님은 나를 궁지로 몰았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개학 첫날부터 학생들이 범접하기 싫어하는 인성부실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2학년 학생이 있었다. 그는 쉬는 시간마다 인성부실에 들어와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이상한 건 선생님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인사를 받지 않는 이도 있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그 학생은 교무실에서 놀기가 취미라고 했다. 1학년 때부터 친구가 없어 교무실을 들락거린다고 했다. 시험문제 출제 기간이면 간혹 결석을 한다고 했다. 교무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아무튼 이상한 놈이었다.


선생님에게조차 따돌림을 받던 그가 새로 온 나에게 살가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와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그에게서 특출한 재능을 발견했다. 그에겐 성능 좋은 안테나가 있었다. 동급생은 물론 선후배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누가 어디서 자주 흡연을 하며, 누가 연애를 하고 있고, 누가 갈등 관계에 있다는 등의 고급 정보였다. 학생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인성부장에겐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그는 훌륭한 정보원이 될 자질이 충분했다. 나는 그를 스파이로 이용하기로 했고, 그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에 꽤 흡족해했다.


그날부터 그는 알짜 정보를 물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을 수첩에 빼곡히 기록했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곧잘 써먹었다. 인성부실에 잡혀 온 학생들은 내가 자신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는 모든 것을 실토하곤 했다. 그의 정보로 인해 많은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었고, 많은 사건들을 수월하게 해결했다. 학교폭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관리자들은 내가 인성부장의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며 극찬했다. 나도 내가 인성부장의 자질이 있는 것에 놀랐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스파이 덕분이었다. 이놈은 유일하게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가성비가 안 좋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돈이 많이 들었다. 고급 정보를 들고 오는 날이면 꼭 먹을 것을 요구했는데, 과자만 던져줘도 잘 작동하던 놈의 안테나가 이제는 햄버거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놈에게 모범학생 상장과 학생회 인성부 차장의 지위까지 부여했다. 어쨌든 우리는 궁합이 잘 맞았다.


녀석이 3학년이 되었을 때 비극이 시작되었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스파이가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며 신고를 했다. 놈의 정보로 인해 징계를 받은 흡연자와 각종 비행 학생들이 스파이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급기야 그를 폭행한 것이었다. 그의 멍든 눈은 안테나가 부러졌다는 신호로 읽혔다. 그를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죄책감보다는 이제 그를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새로운 스파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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