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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Feb 06. 2023

소심한 복수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오래전 모 중학교에 근무할 때 만난 교장은 이상하리만치 악수를 좋아했다. 분명 아침에 인사하며 악수를 했는데 오가며 만날 때마다 또 악수를 청했다. 회의를 시작할 때도 악수, 끝나고 나갈 때도 악수다.


그는 촉수로 소통하는 아바타 나비족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악수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읽어 들이려 했을까. 아무튼 악수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와의 악수가 불편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그는 손을 잘 안 씻었다. 남교사용 화장실은 일층과 이층에 있었다. 이층 교무실 앞 화장실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고 비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일층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비공식적으로 거긴 교장 전용이었다.


한 번은 일층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고 나오는 교장과 맞닥뜨렸다. 여지없이 그는 악수를 청했고 손도 씻지 않고 화장실을 나갔다. 그 후로도 여러 번 그런 일을 목격했다. 더러웠다.


둘째, 그는 악수를 할 때면 꼭 가운뎃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었다. 요즘이면 성희롱으로 신고라도 할 참이지만 그땐 그러려니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러는 걸 보면 습관인 것 같았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일찍 출근을 했는데 살짝 배에 신호가 왔다. 화장실에서 힘을 주고 나서야 화장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 젠장 이미 늦었다.


별 수 없이 서너 칸 남은 화장지를 잘 포갰다. 한 방에 깨끗이 오물을 닦아야 했다. 그런데 의욕이 앞섰을까, 손가락 두 개가 얇은 화장지를 뚫고 나가 오물에 닿았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


조심조심 바지를 추스르고 비누가 있는 일층 화장실로 내려갔다. 화장실로 들어서려는데 막 출근하던 교장과 맞닥뜨렸다. 역시나 교장은 악수를 청해왔다. 나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악수에 응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동은아, 복수는 이렇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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