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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Feb 14. 2023

나만 당할 수 없다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화장실에 못 보던 치약이 놓여 있었다. 일본어로 적혀 있어 어떤 제품인지 알 길은 없었다. 그저 아내가 좋은 치약을 사놓았나 싶어 사용했다.


확실히 일본산은 달랐다. 입안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더러운 변기를 락스로 깨끗이 청소하는 느낌이랄까. 세균과 묵은 치석까지 제거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화끈한 강도가 너무 세서 양치 후에도 싸한 기운은 오래갔다.


때마침 퇴근한 아내에게 치약의 출처를 물었다. 아이들은 사용하기 좀 힘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내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화장실로 가 문제의 치약을 확인했다. 그리고 돌아와 전매특허인 강렬한 등짝스매싱을 날렸다.


"이거 치약 아니에요."

"엥, 그럼 뭐죠?"

"바르는 소염 진통제잖아요. 애들이 사용하고 거기 뒀나 보네요."


그랬다. 구글 번역으로 읽어 보니 짜서 바르는 겔 타입 파스였다. 여러 번 이를 닦고 헹궈도 파스의 역겨운 맛은 가시지 않았다. 우유와 커피를 마시고 간신히 입안을 진정시켰다.


아, 나쁜 일본 놈들! 왜 파스를 치약처럼 만드는 건지, 당장이라도 일본 황궁을 찾아가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픈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직도 얼얼한 입안을 거울로 비춰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만 당할 순 없다. 영화 리뷰를 볼 때면 아주 망작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점을 주고 호평을 써 놓은 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건 분명 남들도 당해보라는 심보에서 쓴 글이 분명하다.


이튿날 출근할 때 파스를 챙겨갔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일층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놓인 치약과 바꾸어 놓았다.


교장 선생님이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길 없지만 수업을 하는 내내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모처럼 활기찬 수업을 했다.

(동은아, 오늘도 한 건 했어. 나 지금 너무 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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