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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Feb 21. 2023

장학사는 다마스 타면 안 되나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교육지원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면서도 내 애마는 여전히 다마스였다. 근 20년 동안 네 대의 중고 다마스를 몰았다. 딱히 다마스를 고집하는 이유는 없다. 그저 첫 차가 다마스다 보니 익숙해서 계속 타게 되었는데 이게 종종 사람을 무안하게 만든다.


한 번은 모 중학교에 물품을 전달하러 갔는데 입구에서 학교지킴이 아저씨가 막아섰다.

"무슨 일입니까?"

"네, 안녕하세요? 교육지원청에서 왔습니다."

"교육청 사람은 그런 차 안 타요."


아저씨의 매몰찬 대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학교지킴이 아저씨에게 갑질을 당할 줄은 몰랐다. 교육청 사람도 다마스를 탄다는 걸 달리 증명할 길이 없다. 명찰이라도 달고 올 걸 그랬다. 이런 젠장!


화를 누그러뜨리고 드라마 '스카이캐슬' 김주영 버전으로 사정했다.

"절 믿으셔야 합니다, 어머님, 아니 아저씨. 그리고 저 양복 입고 있잖습니까? 잘 생겼고요."


아저씨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쭈뼛거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 한마디를 던졌다.

"이상한데.... 차도 더러운데...."


세차를 잘하지 않아서 차가 더럽긴 했다. 기분은 더 더러웠다. 중앙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물건을 내리는데 행정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갔다.


"저 이거 교무실에 전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차와 내 얼굴을 흘끔거리고는 대뜸 말했다.

"택배는 직접 배달하셔야죠."

"아, 그게 아니라..."

"저 바쁜 사람입니다."

턱밑까지 올라오는 욕을 참았다. 이런 젠장!


색안경을 끼고 보는 지킴이 아저씨에 싸가지없는 직원까지 만나고 보니 정신이 산란해졌다. 이게 다 세차 안 한 다마스 때문이다. 당장 차를 바꿀 수는 없고 일단 세차라도 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난생처음으로 자동세차를 하러 갔다.


앞뒤 좌우에서 시원하게 물이 뿜어져 나왔고 세제가 뿌려졌다. 딱 거기까지 좋았다. 근데 차체에 보닛이 없고 폭이 좁다 보니 롤러의 솔이 닿지 않았다. 롤러는 저 혼자 허공에서 돌다 물러갔다. 그리고 천장 위로 뻗어 있는 안테나를 부러뜨렸다. 이런 젠장!


세차를 했음에도 여전히 더러운 다마스를 걸레로 닦으며 다른 차를 사야 하나 고민했다. 나도 교육청 사람이고 싶었다. 부러진 안테나를 들고 속으로 한참을 울었다. 집으로 오는데 라디오는 계속 지직거렸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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