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어느 직장에나 예외 없이 빌런(villan)은 존재한다. 퇴치 일 순위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바퀴벌레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내겐 모 중학교에서 만난 기술 담당 김 부장이 그랬다.
그는 거의 모든 여선생님에게 인기가 있었다. 깍듯한 매너와 법무부장관만큼 수트가 잘 어울리는 날렵한 몸매가 매력 포인트였다. 게다가 그가 지나갈 때면 고급스러운 향수의 잔향이 남았다. 수업도 나름 잘하는지 학생들도 부침 없이 따랐다.
그 모든 것이 가식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남교사들은 알고 있었다. 남자들만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의 반듯한 이미지는 180도로 달라졌다. 술을 강권하고 남자들이 듣기에도 민망한 음담패설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게다가 여교사의 외모에 대한 품평을 듣노라면 그가 교사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저질이었다.
승부근성은 어찌나 강한지 교직원 친목 배구를 할 때면 더러운 인성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질 때면 실수한 선생님에게 삿대질하며 고성을 질러 댔다. 그리고 애꿎은 공을 바닥에 패대기치며 성질을 부렸다. 식빵 언니가 있었어도 그에게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김 부장은 그날따라 기분이 업되어 과하게 마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한참 불콰한 얼굴이 되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따라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가게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곱게 부서진 삼겹살과 곱창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문득 불쌍한 생각이 들어 등을 두드려 주는데 그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너 누구야?"
그의 입게 고여있던 토사물이 내 얼굴과 옷에 튀었다. 역시나 그에게 동정은 금물, 정말 더러웠다.
다음날 그는 약간은 피곤하지만 여전히 준수한 모습이 되어 출근했다. 전날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했다. 그의 말쑥한 정장에 나도 오바이트를 하고 싶었다. 진상을 얘기하고 세탁비라도 청구해야 했지만 그냥 참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분출되던 그 더러운 토사물의 잔상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아내가 술 한 잔 걸치고 남긴 홍어 세 점을 챙겨갔다.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책상 아래쪽 보이지 않는 곳에 홍어를 테이프로 붙였다. 열려 있던 창문도 닫았다. 이내 쿰쿰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의 자리 근처 선생님들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속닥거렸다. 그리고 냄새의 출처를 찾아 코를 킁킁거렸다. 잘 삭은 홍어가 화석이 될 때까지 그의 자리에서 냄새를 풍기기를 바랐다.
그날부터 그의 향수는 점점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