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오류 없는 프로그래밍을 할 정도로 업무면에서는 나름 꼼꼼한 성격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일상생활에서는 바보가 되어버릴 때가 많다. 그리 덜렁대는 성격도 아닌데 이 생활바보의 유전자는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일단 지리 감각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무렵 한 번은 서울로 갈 일이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서울산을 서울로 잘못 보고 빠져나갔다. 지금도 8년째 살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놓치는 일이 있으니 말 다했다. 도시 구획이 잘못된 때문이라 생각한다.
음식을 할 때도 그렇다. 소금 대신 설탕을 넣기도 하고 간장을 넣는다는 것이 액젓을 잔뜩 넣어 음식을 버리기 일쑤다. 세제 대신 섬유유연제만 넣어 세탁기를 돌릴 때도 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생활 곳곳에서 실수는 자꾸 반복된다.
특히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한 번은 모 중학교에서 컨설팅을 마치고 나오는데 교문 쪽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만났다. 낯익은 얼굴인데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 그래서 살짝 간을 보아 말했다.
"안녕하세요? 간만에 뵙네요.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
그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 학교 교장이었다.
최근에는 아내에게 삼각팬티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트렁크 팬티가 아재의 아이템이란 글을 어디서 읽고 근 20년 간 입던 사각팬티를 버리기로 했다. 아내가 팬티 5장을 사 왔다. 아침 출근길에 서둘러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근데 간만에 삼각을 입어서인지 이게 영 불편했다. 무엇보다 팬티가 자꾸 엉덩이에 끼었다. 빼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팬티는 똥꼬를 공략하고 있었다. T팬티를 입은 것마냥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다시 사각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퇴근 후 아내에게 그 얘기를 하며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순간 가공할 위력의 등짝스매싱이 날아왔다.
"앞뒤 거꾸로 입었잖아요.!"
옷방으로 들어가 다시 입으려다 발견했다. 심지어 안과 밖도 뒤집어 입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