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찌 되었나
내 가방엔 항상 어디선가 주운 살짝 찌그러진 코펠이 들어있었다. 강의가 끝나면 나는 의례 그 코펠을 들고 친구들의 기숙방을 쳐들어갔다. 동정 반, 협박 반으로 코펠에 쌀을 받아 밥을 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코펠을 들고 독서실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갓 지은 밥은 반찬 없이도 맛있었다. 그리고 남은 밥은 코펠 채로 가방에 담아 다음날 점심으로 먹었다. 아무도 없는 캠퍼스 구석에 앉아 맨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오늘은 어느 녀석의 기숙방을 털어볼까 잔머리를 굴려보면서 홀로 행복했다.
너무 잦은 방문에 친구들은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기습방문을 당할까 우려하여 미리 "나 오늘 집에 늦게 가."라고 귀띔하는 녀석도 있었고, "우리집에 그만 와."라고 대놓고 거부감을 표시하는 녀석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너무했다. 하지만 먹고 살려니 별 수 없었다. 경상도에 대한 나쁜 지역감정에 내가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대 정치사에 나는 큰 빚을 졌다.
어느 날 한 학년 위 선배가 쌀을 가득 가져다주었다. 혼자서 한 달여는 먹을 만큼의 많은 쌀이었다. 목포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매년 쌀을 보내온다고 했다. 일찍 결혼해 아내가 홀로 직장생활을 하여 대학생 남편을 먹여 살리는 형편이라 자신도 꽤 어려웠을 텐데 그 호의가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매일 밥을 먹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냥 맨밥만 먹었지만 마냥 좋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영악한 것이 몇 주 맨밥만 먹다 보면 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오는 시점이 온다. 반찬이 절실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추운 저녁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다. 인적 끊긴 거리엔 살인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적막감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덜컥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가정집 옥상에서 나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옥상 장독 뚜껑을 닫고 있었다. 순간 묘한 희열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분명 장독엔 잘 익은 김장김치가 있을 터였다. 김치냉장고가 출시되기 전 장독에 김치를 보관하던 시절이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훔치자고 결심했다.
다음날 새벽 두 시경 비닐봉지 하나와 젓가락을 들고 그 집 앞을 서성였다. 세상엔 어둠과 찬바람과 나만 있었다. 열린 대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장독이 세 개 있었다. 어둠 속이라 단지 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비어 있었고 또 하나는 간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액체가 역한 냄새를 풍겼다. 나머지 하나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이 분명 김치임에 틀림없었다. 젓가락으로 쑤셔 보았다. 얼었는지 표면이 딱딱했고 젓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손으로 살얼음을 비집고 쑤셔 넣었다. 뭔가 잡히긴 하는데 흔히 아는 물컹한 김치의 느낌은 아니었다. 뭔가를 잡으면 자꾸 손가락 사이로 바스러졌다. 더 깊이 넣었다. 마찬가지였다. 팔꿈치께 까지 집어넣자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았다. 얼른 비닐에 넣고 현장을 벗어났다. 팔이 너무 시려 끊어질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렸다. 이제 곧 김치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이상한 이물감의 물체가 김치가 아닐 수 있다는 불안이 교차했다. 두근대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가로등에 비쳐 보니 김치인 것 같기는 한데 김치가 아니었다. 아니 고대 김치의 화석임에 틀림없었다.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김치에 곰팡이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내 팔에도 시멘트색 곰팡이가 얼어붙고 있었다. 나도 몰래 정말 시의적절한 욕이 나왔다. "이런 썩을...." 독서실로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갈취는 할지언정 도둑질은 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