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Y와는 나이가 같아서 친구가 되기는 했지만 우리 사이에 공통점은 거의 없었다. 처음 봤을 때 그의 인상은 무척 더러웠는데 자세히 보면 더 더러웠다. 간혹 술이 올라 눈이라도 빨개질 때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키는 170cm 정도로 크지 않았는데 헬스장을 꾸준히 다녀 근육질의 우람한 덩치를 가졌다. 그런데도 그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 더러운 인상과 덩치로 보면 그는 최전방에서 북한군과 대치했어야 했다.
그의 최고 장점은 돈이 많다는 거였고, 두 번째 장점은 돈을 잘 쓴다는 거였다.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던 나에게 그는 최적의 친구였다. 안양에서 온 그는 학교 앞 자취방에서 살았는데 친구들을 불러 자주 삼겹살 파티를 했다. 그 자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는 그와 끈끈한 친분을 유지했다. 사실 인간적으로도 그는 성품이 따뜻했다. 그건 나만 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아침잠 많은 그를 대신해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리고 9시쯤 되면 자취방으로 그를 깨우러 갔다. 대신 그의 집에서 푸짐한 아침 식사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카사노바 기질이 있던 그는 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물론 여자는 자주 바뀌었다. 실연을 당할 때면 나를 불러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2차, 3차까지 가며 덕분에 나는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는 슬퍼했고 나는 뿌듯했다. 오래 굶어 무지 배가 고플 때면 나는 그가 여자에게 차이기를 빌었다.
나의 물주였던 그가 4학년 진급을 앞두고 느닷없이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에게서 얻어먹었던 무수한 밥과 삼겹살과 술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가며 눈덩이 같은 아쉬움이 되었다. 쓰레기장 비스무리한 그의 자취방을 치우고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왔다. 안 입는 옷을 내게 준다고 했다. 그가 떠난 빈자리를 한 무더기 비싼 옷이 채웠다. 이별의 슬픔은 금세 사라졌다. 5월이면 교육실습을 나가야 해서 옷이 필요하던 차였다. 하나씩 꺼내 입어보는데 옷이 너무 컸다. 이런 제길! 앞으로는 돈 많고 체격도 비슷한 친구를 사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