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매사에 근엄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데가 있어 우리는 모두 선생님을 어려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학생들은 그를 무척 따랐는데 그나마 상대적으로 출중한 외모가 한몫했을 것이다.


숙제 검사 시간이면 교실은 긴장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는 30cm 정도의 회초리를 항시 지니고 다녔다. 숙제를 안 한 학생은 불려 나가 손등을 맞아야 했다. 무척 아팠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상 줄이 비뚤어져도 때렸고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와도 때렸다. 우리는 얼굴 하얀 여선생님이 있는 옆반을 부러워했다.


선생님의 만행(?)이 심해질수록 아이들은 어떻게든 선생님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선생님보다 더 빨리 등교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반듯한 글씨로 숙제를 하려 애썼다. 하지만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지 않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무슨 이유를 대든 그는 우리를 때렸다.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다소 수줍어하는 성격이라 나는 질문을 잘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선생님의 설명이 마뜩잖았던 것 같다. 질문을 하기 위해 판서를 하는 선생님을 불렀다. 그런데 실수를 했다. 손을 들며 나도 모르게 '아버지!'라 불렀다. 다시 선생님이라 고쳐 부르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들은 내가 정말로 선생님의 아들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필 선생님과 나는 성이 같았다. 아이들은 나를 둘러싸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거듭 부인해도 아이들은 선생님과 나를 부자 관계로 기정사실화 했다. 그날 이후 나의 학교생활은 달라졌다. 아이들이 내게 극도의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쁠 건 없었다.


그 후로도 선생님의 매질은 계속되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친아들도 똑같이 때린다며 아이들은 선생님을 공평무사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더 이상 회초리 맞는 것을 억울해하지 않았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 아닌 사람을 아버지라 불렀다. 그는 의적이 되었고 나는 매 맞는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존경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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