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를 안 가봐서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월드컵의 열기 때문이었을까, 2002년 여름은 유독 더웠다. 신접살림을 차린 전셋집은 모기가 많았다. 방충망이 있었지만 창문 자체가 워낙 헐거워 틈새가 많았다. 임신한 아내의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여 에프킬라도 뿌리지 못하고 우리는 밤마다 헌혈을 감수해야 했다.


어느 날 축구경기를 보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축구 골대처럼 프레임을 만들고 모기장을 씌운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봐도 신박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었다. 아내를 모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멋진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당장 동네 철물점에 자재를 구입하러 갔다. 이참에 특허라도 내 볼까 생각도 했다. 돈이 엄청 들어오면 뭘 사야 할까 괜한 걱정도 했다. 가장 두꺼운 스티로폼과 모기장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가로 세로 각 2m 크기의 축구 골대를 만들 작정이었다. 길이를 재단하고 칼로 오리고 테이프로 이어 붙이느라 방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뭘 만드냐고 아내가 물었다. 깜짝 선물을 하고 싶어 그냥 두고 보라고 했다.


꼬박 두 시간을 보내고서야 스티로폼 절단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연결하고 모기장만 씌우면 마무리가 될 터였다. 근데 이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조립한 골대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자꾸 기울어 넘어졌다. 아내는 스티로폼이 먼지처럼 날리는 방을 보고 차마 성도 내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아내가 말했다. "마트에 모기장 팔아요."


그때까지 마트를 가 본 적이 없었다. 모기장이라는 게 있는 줄도, 마트에서 그런 물건을 파는 줄도 몰랐다. 아내는 내가 모기장 파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다. 역시 사람은 견문이 넓어야 한다.


엉망이 된 방 안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특허의 꿈은 사라졌다. 당장 마트 견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뭐든 할 때는 아내와 의논하는 것으로, 깜짝 이벤트는 최수종이나 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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