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취 Jan 19. 2023

변화에 느리게 적응하는 중

휴직한 엄마의 개인 생활1

 어린 코끼리 발목을 묶어 키우면 커서도 도망가지 않는다고. 예전에 겪던 많은 제약들이 사라졌는데 난 여전히 담을 넘어가지 못하는구나. 그때 그 습관대로 살고 있구나. 스스로 자유를 가두고. 피해의식에 남을 원망하는...




3월 한 달간, 매주 일요일마다 고민했다.

혼자 영화관에 가도 될까?




 

남편은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닌다. 아이와 나, 남편 우리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일요일 하루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줄곧 그랬다. 남편은 주말에 일을 한다. 주말 이틀 다 한 적도 있고 하루만 근무하기도 다. 하지만 팔 년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이틀을 다 쉰 건 휴가 기간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아이와 내가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중에 일이 끝나면 아이를 원에서 데리고 오고, 주말엔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쉬는 평일. 부랴부랴 퇴근해서 셋이 보내는 일상을 만들었다. 조퇴가 가능한 날은 강화도도 가고, 소래포구도 갔다. 아이에게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다 남편은 일을 하며 일반 대학원에 진학했다. 휴무 이틀 중 평일 하루에 들을 수 있는 모든 수업을 꽉꽉 채웠다. 아침 9시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우리 세 식구가 함께 할 수 있는 날은 일요일 하루가 되었고, 반대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면 내가 오롯이 쉴 수 있는 날도 일요일 하루였다.




 문제는 나였다. 일과 육아, 집 균형을 잡는 것 같다가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소화하지 못했다. 짚으로 만든 집이 작은 불씨에 활활 타듯 작은 스트레스에 내 속은 시커멓게 타버렸다.




 매년 학기말이 고비였다. 학기 막바지가 되면 아이들 몇몇은 친할 대로 친해져 통솔이 어려웠고 나는 그런것들에 예민했다. 아이들 간 권력구조가 굳어져 개입해야 하는 상황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거기에 업무적으로 생활기록부 작성할 것들이 넘쳐나니 심리적으로 쫓겼다. 도미노가 넘어가듯 집안일에 육아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불안이 극도로 올라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어지고 모든 화살은 남편을 향했다.




 당신이 주말에 일하니까 나는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의무에 계속 눌려있어. 대체 왜 내가 이렇게 다 해야 해? 나 너무 힘들어. 평일 내내 학교에서 아이들 보고 주말도 아이보고... 숨 쉴 틈이 없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오랫동안 반복된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신물이 나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남편의 이직 밖엔 없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직한다고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무엇보다 본인이 그리 원하지 않았다. 바뀌지 않을 것을 생각해 봤자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 찾기 시작했다. 새벽 루틴을 만들어 혼자 운동도 하고 책도 읽어보고...  역부족이었다. 상담사를 찾아가 털어보고, 술을 싫어하던 내가 술을 마시고 잠자는 습관도 만들어보고... 몸부림치며 꾸역꾸역 억지로 시간을 넘겨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해에 이르렀다.




 그러다 한 영화관 멤버십을 발견했다. 일 년에 15만 원, 20번 영화 관람이 가능하고 그 건물 카페 음료권 및 할인쿠폰을 제공했다. (올해는 24번으로 늘어났다.) 명필름이라는 영화 제작사가 운영하는 영화관. 심재명 대표 인터뷰 내용을 보다 지향하는 바가 마음에 들었다. 어떤 곳일지 궁금해졌다.



 

 가입하기에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우리 집과 거리가 멀고 영화 관람이 주말만 가능하다는 것. 편도 30km지만 자유로 잘 려 있으니까. 하지만 주말은...  남편이 쉬는 날. 우리가 유일하게 함께 보낼 수 있는 요일. 이걸 포기하고 갈 수 있을까?오히려 남편과 아이에게 둘만의 시간을 주는 걸 수도 있는데... 우선 보고 싶던 영화 '태일이'를 아이와 관람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코로나로 뒤숭숭하던 그 때 상영관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한 팀이 있었고 덕분에 맨 뒤에서 계속 어둠이 무섭다는 아이를 잘 다독여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멤버십 회원이었다.




 그게 1월 말이었다. 2월은 코로나에 걸리고 이사로 바쁘게 지나갔다. 드디어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가 입학을 했다. 아이에게 해주지 못했던 걸 해주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그간 쌓인 억화심정들을 다 훌훌 털어버릴 생각이었다. 조금씩 설레는 마음으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일요일이 되었다. 계획한 대로라면 영화를 보러 가야 하는 날. 하지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주중에도 아이가 학교 가고 나면 2,3시간 남짓 시간이 있는데... 유일하게 셋이  함께 보내는 요일에 영화를 보러 가도 될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내가 그래도 되나?


 

 고민하다 보면 이미 영화 상영 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달콤한 일요일 오전은 금세 오후가 되버렸다.  발목에는 혼자만의 상상 밧줄이 감겨 었다. 대체 기회가 있는데 나는 왜 가지 못하나. 내가 원하는 걸 하는 법을 잊어버린 건가. 가족에 희생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그러지 않을 때 쉽게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 후 다음 스텝은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이러니 '하며 남편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거였다. 예전엔 아이가 어려 내가 희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니까. 지금은 아닌데. 그 인생에 도돌이표를 놓고 싶지않았다.




 3월 마지막주 일요일 눈질끔감고 대충 패딩만 입고 집을 나섰다. 아슬아슬한 시간에 무작정 액셀을 밟았다. 영화 시작 5분 전에 도착했다. 그날 상영한 영화는 '킹리차드'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4월이 얼른 오면 좋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