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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Jan 27. 2023

남은 건 필라테스 양말

휴직한 엄마의 운동 생활1

 

 퉁퉁해 보이는 두툼한 패딩 대신 벼운 코트에 선뜻 손이 가는 계절이 왔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도 플라스틱 질감에서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따사로운 낮. 주변에 눈이 간다. 때마침 일전에 등록해 놓았던 필라테스 원에서 연락이 왔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필라테스 실내공사를 마치고 오픈합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예약하고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중학교 체육시간에 일주일 한번 골프 수업이 있었다. 첫 번째 수행평가는 유연성 테스트였다. 두 다리를 붙여 곧게 뻗어 선 후 허리를 굽혀 바닥에 손바닥을 대는 . 두 손바닥을 완전히 바닥과 맞닿아 붙이고 10초를 세면 만점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열심히 손을 뻗어도 손끝만 겨우 닿을락말락 했다. 친구들이랑 쉬는 시간마다 서로 곡소리 나게 허리를 눌러줬. 노력은 빛을 보아 시험날 가뿐히 통과. 예~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앞으로 구부렸던 순간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운동부족 때문인지 점점 손 끝은 발가락과 멀어져 갔고 그 이후로 둘은 한참동안 만날 수 없었다.




 티비프로그램에서 배우 손예진의 하루를 적 있다. 그녀가 중간에 운동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그게 바로 기구 필라테스였다. 공주침대? 같은 직육면체로 생긴 기구에서 그는 두 다리를 위에 올린 채 매달리고 올라가고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생경한 기구에 올라 몸매를 가꾸는 모습을 보니 필라테스가  우아하고 급스러운 운동으로 느껴졌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나가는 길에서 필라테스 광고지를 다. 1회 8900원 7개월 72회. 회당 가격은 저렴한데. 한 운동을 꾸준히 해본 적이 없는 내게 어마무시한 기간이었다. 이 정도 하면 온몸에 잔근육이 생기고 유연해질 수 있겠지? 뚝딱이 몸이 돼버린 나도 발끝을 넘어 바닥까지 손이 닿을 수 있겠지? 방송에서 본 그의 몸매를 상상하며 계약을 한 게 한 달 전이었다. 




 건물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 건물에만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곳이 3군데 있었다. 건물주 너무 했네 면서도 그만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나봐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닥도 거울도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했다. 막 박스를 풀고, 필름을 뜯고 놓인 것 같은 사물함, 기구들 사이에 내 팔뚝 만한 가녀린 다리의 소유자가 있었다. 딱 붙는 레깅스와 스포츠 브라를 입고 예쁘게 화장을 .  흠 나보다 열 살은 어리겠군. 저 팔뚝으로 얼마나 운동을 하려나? 그의 구령에 맞춰 운동을 시작했다. 기구에 올라가서 누운 후 상체를 들고 팔을 들고 다리를 움직이고... 볼 땐 별거 아닌 동작 같았는정작 내 몸은 사시나무 떨듯 덜덜덜 흔들렸다. 




 집에 돌아와서 힘이 쪼옥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 데리러 가기 전까지 한 시간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점심만 겨우 챙겨 먹고 학교로 향했다. 아윽 소중한 시간. 다음날은 더 아팠다. 온몸에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게 돈 내고 뭐 하는 짓인지. 대체 일하며  필라테스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거지. 매번 가기 싫은 맘에 나가기를 미루고 미뤄 예약시간 살짝 지난 시간에 도착했. 센터에 가선 열심히 운동을 따라 했다. 나라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자세는 나아졌다. 처음엔 대체 어떤 자세를 하라는 건지 한국어임에도 듣고 이해가 안 됐는데 점점 감을 찾아갔다. 


 


 듣다 보니 강사들 티칭 스타일이 서로 많이 달랐다.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이끌며 한 동작을 여러 번 반복 몇 군데 근력을 집중해서 키우는 분이 센터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분은 치열하게 예약시간에 딱 맞춰 들어가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반면 나는 부드러운 말투로 우쭈쭈 해주시는 분이 좋았다. 운동 진행방법도 온몸의 근육을 조금씩 훑는 식이었다. 한 부분이 괴로워질만하면 다음으로 넘어갔. 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좀처럼 돈 내고 벌 받는 느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할 때마다 허벅지가 터질 거 같고 엉덩이 근육이 아프고 너무너무 힘들었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땐 일주일가던 통증이 하루 이틀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매번 힘드니 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또한 식이를 병행하지 않아 운동한 게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다. 아무도 몰라주니 시무룩했다.




 여름 방학이 오고 나와 아이는 가족들이 사는 울진, 부산을 거쳐 거제와 통영까지 찍고 긴 여름휴가를 즐기고 왔다. 돌아와서 무리한 탓인지 아님 코로나에 또 걸린 것인지 일주일간 앓아누웠다. 회복하는 시간까지 갖고 한 달 만에 돌아간 필라테스 수업에는 처음 갔을 때 나로 돌아가 있었다. 오 마이갓.  하나 올리는 것도 너무 힘들어. 어쩔 수 없지. 조금씩 조금씩 다시 시작해 보자. 내게 맞는 분으로 예약해 수업을 들었다. 그래도 이제 손끝은 가볍게 바닥에 닿았다. 그 상태로 근력을 키우는 동작들을 차례로 했다. 꾸준히 갔다.




 어느덧 에어컨이 다시 필요 없는 계절이 왔다. 길게 느껴졌던 7개월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남은 횟수 0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나를 칭찬한다. 짝짝짝 이제 남은 건 선택이다. 다시 가입할까 말까 기로에 서서 고민했다.



날씬해졌는가.           아니오.

건강해졌는가.           .

운동하는 것이 재밌는가.  아니오.

꾸준히 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오. 



그렇다. 처음에 끊을 때 약정기간과 횟수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거다. 재미가 없었다. 의무감에 꾸역꾸역 했다. 덕분에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좀 더 튼튼해졌.  하지만 의무감이 행동의 동기가 되는 거 말고 그냥 즐거운 걸 하고 싶었다. 재밌어서 운동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싶다가도 다른 운동도 체험하면서 한번 찾아보고 싶었다. 언제 또 내가 다양한 걸 해볼 시간적 여유가 생길지 모르는데.




 일주일 세 번 7개월간 나름  안면이 쌓여 강사님과 정이 들었다. 말은 안해도 눈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그만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어려웠다.

정말 고마웠어요. 복직하고 돈 벌어 돌아올게요.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 오픈한다는 요가원과 폴댄스 스튜디오가 보였다. 이별의 아쉬운 마음을 한편에 두고 체험수업을 예약했다.

소울메이트 운동을 찾는 마음으로  해볼거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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