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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Feb 07. 2023

8살 생일파티

아이와 함께하기

   희미 기억. 하지만 사랑받은 느낌, 행복했던 감정 한 장의 사진처럼 뚜렷이 남아있다.



 무더운 여름날. 마당에 있던 포도나무 덩굴 아래 자리를  테이블을 고 김밥, 빵, 떡, 케이크 등을 접시에 올려놓았다. 나는 왕관, 귀걸이, 반지, 목걸이를 치렁치렁하게 하고 초를 세게 불었다. 옆에 앉아있던 친구들.






 작년까지 아이 생일파티를 따로 못했다. 초대할 만큼 친한 아이 친구 엄마가 없었다. 다들 잘 사귀는 거 같은데 일 마치고 유치원에 가면 다른 사람을 마주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거리 두기가 필수인 시절이기도 했고.



 올해는 다르다. 아이는 8살. 코로나가 일상이 되었고 육아휴직을 한 후 함께 등하교를 하니 자연히 사람들도 사귀. 하굣길에 마주쳐 아이들끼리 놀이터에서 놀면 엄마들은 자연스레 주위에 앉아 번호를 교환했다. 서로가 익숙해졌을 때쯤 더운 공기를 마시며 미역국을 먹었  출산일이자 아이의 생일이 다가왔다. 일 년 중 내가 주인공인 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마음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때마침 아이도 생일 파티를 열어 달라 노래를 불렀.


 알았어. 반에서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 이야기해 봐.



 방과 후에 몇 번 어울렸던 친구들 이름이 줄줄 나왔다. 이미 연락처를 다 아는 아이들. 다행이다. 거기에 여자친구들 이름도 엄마의 바람으로 슬쩍 집어넣었다.


 희은이는 어때? 저번에 보니까 되게 잘 놀던데. 지유는?


 먼저 생일파티에 초대해줬던 친구까지 명단에 넣어 리스트를 완성했다.




 요즘 생일파티를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막상 하려니 막막했다. 맘카페에서 검색했더니 키즈카페를 대관한다는 글이 눈에 띄었. 키즈카페 안에 룸을 예약하면 그 안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몇몇 키즈카페는 따로 음식과 세팅을 준비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아이들과 엄마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아이들끼리 놀이시설에서 놀게 하는 것이구나. 망설여졌다. 애들도 신경 쓰며 엄마들까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데 중간에서 무슨 말을 하지? 자신이 없다. 키즈카페 대관, 음식, 장식 다 따로 하면 비용도 어마무시하다.




 아이들만 우리 집에 초대하는  낫겠어. 코로나 시기에 놀이 시설을 대여해서 집에서 놀게 한다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게 있음 키즈카페에 가지 않아도 잘 놀 것 같다. 그런데 검색을 하면 할수록 소음이 엄청 크단 평이 걸렸다. 아랫집에 피해를 주고 싶진 않은데....  집에서 할만한 프로그램을 짜서 내가 놀아주는 건 어떨까? 교사경력 십 년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쓰나. 레크리에이션 연수도 듣지 않았나. 자격증도 있다고. 급 자신감이 생겼다.





  당김에 쇠뿔 뽑는다고 초대장을 만들고 카톡으로 전송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ㅎㅎ 00이 생일파티를 집에서 하려고 하는데 초대하고 싶어서요~  일요일에 해서 혹시 안되면 부담 없이 말해주세요^^  

다들 감사하게도 바로 온다고 흔쾌히 대답을 다.





 이제 실전 준비다. 학급에서 함께 했던 게임이나 활동들 중 반응이 좋았던 게 뭐였는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슈링클 종이였. 매년 4월이면 학교에선 과학의 달 행사를 한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과학 프로그램을 찾아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때 백이면 백 열이면 열 다 좋아하던 .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네임펜으로 슈링클 종이에 그리고 구멍을 뚫어 오븐에 구워내면 열에 의해 수축되어 작고 단단한 키링이 된다. 1학년 수준을 고려해 포켓몬 도감을 잘라 아래 대고 그리게 준비하면 될 것 같다.




두 번째는 보물찾기. 집구석구석에 등수를 적은 종이를 숨겨놓는 거다. 가만히 앉아만 있음 답답하니까. 못 찾으면 김이 새니까 종이를 많이 만드는 게 좋겠다. 단 상품은 아이들 수 6개만, 남은 종이에는 꽝과 마이쮸 이런 소소한 걸 집어넣어야겠다. 종이에 1등부터 6등까지 적고 상품을 순서대로 고르게 하는 . 상품은 과자로 하자. 먹는 게  남는 거다. 미리 포장해서 준비하기로 했다.




 두구두구두구 오랫동안 기다리던 날이 왔다. 생일 당일 아침 7시. 아이는 신이 나서 일찍 일어나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파티 시작은 3시인데 벌써부터 다른 건 눈에 안들어온다.  꾸미음식 준비하자. 지난주에 미리 다이소에 가서 풍선과 가랜더 그리고 은색 발도 . 작년 6학년 졸업식 때 교실을 한번 꾸며 봤다고 어떻게 꾸밀지 대충 감이 왔다. 반짝반짝 은색 발을 두 개 치렁치렁하게 겹쳐 그 위에 해피벌쓰데이가 쓰인 가랜더를 위에 얹었다. 풍선도 열심히 불어 여기저기에 붙였다.




 음식은 남편담당. 동네 김밥집에서 종류대로 김밥을 사고 꿀떡, 피자, 치킨 등을 사고 떡볶이를 만들었다. 케이크는 아이가 젤 좋아하는 포켓몬 아이스크림 케이크이다.  



 아침에 묶은 머리가 헝클어질 때쯤 아이들이 집에 오기 시작했다. 띵동. 선물을 담은 쇼핑백을 들고 신나서 들어오는 아이들. 오자마자 쿠키를 만들랬다. 파티 시작 전에 집이 난장판이 되는 걸 방지하고자 프로그램을 꽉꽉 채웠다.

안녕. 생일파티에 와줘서 고마워. 손 씻고 쿠키 만들자.


제일 처음 온 친구가 만든 똥모양 쿠키가 다 구워질 때쯤 마지막 멤버가 집에 왔다. 모두 모이자 친구들은 아이에게 얼른 준비해 온 선물을 주고 싶어 했다. 선물을 오자마자 내밀거나 내게 언제 선물 주냐며 자꾸 물어보았다. 아이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한 친구들 마음이 훤히 보이는 게 참 귀엽고 예뻤다. 원래 계획은 키링 만들기였지만 급 케이크 불고 선물을 전달하기로 했다.




 역시.... 선물 시작과 끝은 모두 포켓몬이었다. 포켓몬 카드팩, 포켓몬 인형이 연달아 나왔다.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선물 개봉이 끝나고 포켓몬 키링 만들기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고. 엄청난 포켓몬 사랑.




 끝나고 보물 찾기를 했다. 아이들은 열심히 이 방 저 방 돌아다녔다. 쪽지가 30개나 되다 보니 나도 숨겨놓은 종이를 어디에 놓은 지 잊어버렸다. 아이들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도 도와줄 수 없었다. 결국 찾지 못한 상품 쪽지는 다시 만들어 숨겼다. 눈치 빠른 한 아이가 내 동작을 보고 쪽지를 세장을 찾았다.  "상품 쪽지는 한 사람당 한 장이야. 대신 여러 장 찾으면 양보할 수 있어."  결국 순서대로 하나씩 상품을 고르 포장을 뜯었다.  안에는 과자... 뒤에 포켓몬 카드 한 팩이 들어있었. 아이가 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같이 포장했었다. 애들 마음은 애들이 잘 아나보다. 과자보다 포켓몬 카드팩을 훨씬 좋아했고 그중 3등 팩에서 좋은 카드가 나와 부러워했다.




 이제 저녁 식사 타임! 남편이 준비한 음식을 착착 착착 담아 테이블에 올렸다. 슈링클을 먼저 끝낸 아이들에게 소떡소떡을 만들게 했었는데 본인이 만든 거라며 제일 잘 먹었다. 그리고 과일에 주로 집중했다. 덕분에 다른 음식들은 대부분 남아 다음날까지 일용 양식이 되었다.



 밥을 먹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 누구 좋아하지? 아닌데. 나는 좋아하는 애 없어.


한 명씩 돌아가다 유일한 홍일점이 희은이가 생일 주인공에게 물어봤다. 너 민지 좋아하지? 그때 박력 있는 대답.

 "아니 나 너 좋아해. "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상남자 용기에 지켜보던 엄마 가슴이 설렜다. 많이 컸네 짜식




 마지막코스는 놀이터였다. 희은이가 남자아이들보다 그네를 훨씬 잘 탔다. 나중엔 결국 남자아이들을 돌아가며 태워줬다. 걸 계기로 아이는 며칠 후 그네를 마스터했다. 신나게 놀다가 목이 마를 때쯤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갔다. 하나씩 골라잡고 땀범벅이 된 채 아구아구 먹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하루 잘 보냈구나 싶었다.


 


 아이들 체력의 한계는 어딘가. 더 놀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미 7시가 훌쩍 지났다. 다 같이 동네를 순회하며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돌아오니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벽에는 풍선들이, 테이블 위에는 만들기 재료들이 어지럽게 올려져 있었다. 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밤이었다. 생일파티로 하얗게 불태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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