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택배가 쌓이고 있다.
여보 나 태어나서 요즘 가장 물건을 많이 사는 거 같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꽤 많네. 이렇게 금방 편하게 다 오다니"
쿠팡이 압도적 온라인 판매실적 1위라는 남편 얘기를 한 귀로 들으며 집에 갓 온 물건들을 트렁크에 테트리스 하듯 넣었다. 아무리 맞춰봐도 들어가질 않는다. 이번엔 압축팩을 검색한다.
작년 2월 그러니까 거의 1년 전 발리행 비행기 티켓을 두 장 예매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올스톱하며 예매했던 발리행 티켓을 취소한지 4년만이었다.
대학생 때 말레이시아로 해외 멘토링을 갔었다. 1월인데 이렇게 덥다구? 두터운 외투를 다 벗고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가벼움이 너무 좋아 새벽마다 혼자 나가 동네 산책을 했다. 그 이후로 1월마다 뻔질나게 더운 겨울을 찾아다녔다.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호주, 대만, 베트남 등등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곳. 바로 신들의 섬이라는 발리다. 동남아인데 장장 7시간이 걸리는 곳. 그래서 비행기 티켓이 비싼 곳. 아예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간 사람은 없다는 그곳. 오랫동안 가고 싶었다. 발리에서 촬영했다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도 봤다. 비록 1월이 우기이긴 하지만 동남아 우기는 스콜성이라 잠깐 오고 그치니까 괜찮을거야. 아이도 많이 컸으니까. 최대한의 긍정 회로를 돌렸다.
"엄마랑 내년 겨울 방학에 발리 가서 한 달 살고 올까? 네가 싫어하는 더운 날씨이긴 한데 수영장에 풍덩 들어가면 괜찮을 거야."
음.. 좋아"
겨울에도 집에서는 옷을 홀딱 벗는, 몸에 열이 많은 아이가 흔쾌히 대답을 했다. 그 다음은 남편. 그는 평소에도 뭐든 다 하라는 사람이다. 알았다는 말을 듣고 티켓팅을 했다.
11개월이 지났다. 예년과 다르게 비가 하루종일 와 도로가 침수되고 모기가 엄청 많다는 발리 카페 글이 올라왔다. 발리 밸리로 부르는 장염 환자는 왜 이리 많은지. 글을 읽을 때마다 각종 약과 연고, 기피제들로 캐리어가 채워지고 살 목록이 늘어났다. 하아 원래 난 미니멀리즘 여행가였는데... 아이와 떠난 여행에서 사건 사고를 경험하고 나니 불안이 생겼다.
압축팩과 멀티배터리 충전기, 샤워 필터까지 집 앞에 오고 다시 꾹꾹 눌러 담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 캐리어를 닫았다. 두 손으로도 들기 어려운 무게. 흡족하게 현관 앞에 갖다 놓고 떠나기 전날 밤. 설렘과 떨림으로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 밤. 억지로 눈을 감았다.
아침이 밝았다. 더 챙기려고 한 게 있었는데 뭐였더라? 침대에 누워서 분명 생각했는데 모르겠다. 윽 그냥 가자. 이제 이판 사판이다. 아이를 깨워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캐리어가 좀 이상하다. 딸깍 아무리 눌러도 손잡이가 위로 안 올라온다. 여기에 고정해 가려고 레디백도 챙겼는데... 다시 또 다시 아무리 해도 안된다. 그렇지 원래 삶은 쉬운게 아니다. 마음대로 안된다. 뭐 그래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레디백은 한쪽 어깨에 메고 캐리어는 손으로 밀면된다. 발리까지 내가 끌고 갈 수 있겠지? 찜찜한 마음을 한켠에 두고 공항으로 떠났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