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트래블링 스타일

너와 함께 한다는 건

by 별의자리
"그러게 엄마는 형이나 누나 아님 동생을 낳았어야지."


같이 물놀이하다가 지쳤다. 아들아 나이 든 엄마는 이제 힘들어. 해도 떠날 줄을 모른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수영장에 가자고 하던 아이는 호텔 밖에만 나갈라 하면 덥다고 투덜이가 된다. 면세점에서 사 온 성능 좋은 선풍기도 소용이 없다. 뜨거운 바람은 별로야.



결국 주변에서 점심만 먹고 들어와 바로 또 수영을 한다. 문제는 혼자 놀지 않는다는 거다. 선베드에 누워있어도 공을 내가 있는 자리로 계속 던진다. 사실 수영장에는 서양 아이들이 있다. 주변에는 부모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때마침 그들도 같이 놀고 싶은지 말을 건다. 문제는 말이 빠르고 호주식 억양이 알아듣기 힘들다는 거다. 함께 어울리려다 대답하지 못해 얼음이 된 아이는 왜 자기만 낳았냐 투정을 부린다. 어렸을 땐 분명 형제자매 필요 없다 해놓고 짜샤...




3일 전, 우리는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며 손잡이가 고장 난 캐리어를 무사히 부쳤다. 주말답게 꼬불꼬불한 출국 수속 줄을 지나 라운지와 면세점을 야무지게 들린 후 비행기를 탔다. 아이는 능숙하게 탭으로 영화를 보고 게임을 했다. 덕분에 나는 옆에서 책'나의 돈키호테'를 읽었다.



준비 기간이 11개월이나 되다 보니 문득 한달살이 여행은 현실에 대한 도피인가 사치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 적이 있었다. 일상에서 너무 긴장하며 살아서 이렇게 잠깐의 도피로 해소하려는 건 아닐까. 평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게 건강한 방법일 수도 있는데... 외국에서 3주 보내는 비용으로 물건을 산다면 집에 가전을 몇 개 바꿀 수 있다. 한 달 여행하는 것보다 몇 년 쓰는 게 훨씬 좋은 거 아냐? 그러자 다른 나라에서 한 달 살이를 꿈꾸고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잘못된 선택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평생 자기를 알기 위해 애써야 해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자신을 돈키호테라 말하며 살아가던 아저씨를 찾아 헤맨 솔이에게 아저씨가 만남의 순간 한 말이다. 본인이 알고 보니 산초였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래. 도피면 어떻고 사치 좀 부리면 어떤가. 그냥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걸.



아이와 단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인데 아이는 이곳 생활을 좋아할까. 친구는 사귈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음식이 가장 맛있을까. 여기서도 아침 일찍 일어날까. 어느 정도까지 영어가 통할까. 입가에 설렘이 번진다. 간질해진 마음으로 발리에 도착... 하기엔 좀 멀다. 기내식과 샌드위치 간식을 먹고 새로운 책을 반쯤 읽고 언제 도착하냐며 아이의 짜증을 다 듣고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잠시후 기장님 운전 실력이 돋보이는 부드러운 착지를 느끼며 웅우라이 공항에 도착했다.




우기 발리 답게 도착하니 거친 빗줄기가 공항 건물과 바닥을 세차게 치는 소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돈을 찾고 유심을 받고 택시를 타 숙소에 도착하니 아침 일찍 시작한 여정이 어두컴컴한 밤이 돼있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음식만 먹었지만 이 순간을 위해 한 것이 있다. 바로 라운지와 비행기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은 것. 짐을 대충 정리한 후 호텔 식당에서 시원한 빈땅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이 몰려왔다. 긴장했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고 알딸딸한 기분 좋은 취기가 느껴졌다. 아이도 세찬 빗 속에 수영장을 보면서도 연신 좋아했다. 당장 들어가자는 것을 내일 가자며 달랬다. 이땐 몰랐다. 내가 수영장 붙박이가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