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미나리>가 호평을 받으며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아인 혐오로 범죄가 뉴스를 통해 연신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아름답고 보편적이다’라는 평을 받은 영화의 존재와 흥행은 매우 귀하다.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두 삶의 고충, 애환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니클의 소년들’은 유색인종 차별 법인 짐 크로우 법이 있던 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쓴 콜슨 화이트헤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하버드대 출신의 성공한 소설가인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해 ‘성공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흑인이다. 이건 돈과 명예 여부와 관련이 없다 ‘라고 했다.
그는 플로리다주 마리아나의 도지어 남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이 책을 썼다. 1900년에 개교하여 2003년에 문을 닫을 때까지 이곳에선 교화를 목적으로 강제노역, 폭력과 성폭행이 자행되었고, 이 같은 사실이 오랫동안 학교와 정부에 의해 은폐되었다. 그러다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 고고학과 교수와 제자들을 통해 매장지가 감식되며 알려지게 되었다. 학교가 있던 터에서 시신이 80여구가량 발견되었다.
주인공 엘우드는 성실한 흑인 소년이다. 생일선물로 받은 마틴 루서 킹의 음성을 들으며 인권운동에 대한 꿈을 키워나간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고등학생 신분에 대학 수업을 듣게 되어 히치하이킹으로 대학교를 찾아가던 길, 백인 경찰에게 잡힌다. 차량 도난범이란 죄목이었다. 그렇게 그는 니클 아카데미 감화원에 가게 된다. 그 안엔 보호자가 뚜렷이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다수였고, 그 안에서도 그들은 백인과 흑인이 나뉘어 다른 대우를 받았다. 그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희망을 잠깐 가졌지만, 괴롭힘을 받던 아이를 도와주다 끌려간 화이트하우스와 뒤편의 갈고리에서 그곳의 실체를 알게 된다.
엘우드가 니클에서 겪는 상황과 마틴 루서 킹의 목소리는 서로 만나지 않고 평행하는두 직선처럼 팽팽히 존재한다. 니클에서 관리인들은 아이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고 거리낌없이구타하며 강간한다. 아이들 내 적자생존으로 괴롭힘이 그들 안에서도 일상화되어있다. 자신들을 향한 무차별적 악의를 느끼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 상황에서 엘우드를 통해 마틴 루서 킹은 이야기한다.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매일 삶의 여로를 걸을 때 이런 품위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인종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은 존엄성이 무시되는, 자신을 굴복시키는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혐오나 비난을 겪고 나면세상을 두려워하게 되거나 불신하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엘우드의 행동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나로서 살아갈 용기를 준다. 식상하게 들리는 바른말이 엘우드의 행동으로 점차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려움을 떨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짐 크로우 법이 사라졌다.백인들만 앉던 버스 앞좌석에 앉은 흑인 여성이 시작이었다.소설의 말미에서 엘우드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일하던 호텔에 50여년이 흘러 손님으로 간다. 어릴적엔 돈이 있어도 피부색 때문에 손님으론 갈 수 없었던 곳이다. 지금은 미국 어디에서든 더 이상 피부색에 따라 앉는 좌석이나 화장실이 다르지 않다.십여년 전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태도의 문제는 남아있다. 작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있었고, 며칠 전 아시안 혐오로 사망한 아시안 여성들이 있었다. 법은 사라졌지만, 소수자를 향한 태도는 보고 자란 대로 대를 이어여전히남아있다. 피부색, 성별, 나이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것이 민주주의에서 평등의 의미이다. 변화는 계속 필요하다. 작년에 이 소설이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