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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Apr 27. 2021

결혼을 일주일 앞둔 너에게

5월의 신부

 우리 교복을 입고 처음 만났지. 야자를 하고 집에 가는 길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깜깜한 밤이었어. 친구의 친구로 자연스레 함께 걸었지. 넌 이야기를 하다 쉽게 잘 웃었어. 점점 웃음끼 가득한 네 눈빛만 봐도 나도 따라 웃게 되더라. 이후로 우린 진짜 시끄러웠어. "다리가 두껍다, 가슴이 작다, 눈이 작다" 대학 로맨스를 꿈꾸며 예뻐지고 싶었나봐.  이제와 돌이켜보니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주택가 사람들 참 힘들었겠다. 아니. 아직도 그 골목은 여전할듯해.



 네가 수시로 대학에 합격했단 소식을 내게 알려준 날.  정말 또렷이 기억나.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거든.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네가 복도로 불러 따라 나갔지.  열심히 준비한 걸 알고 있기에 정말 기뻤어.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날 늘 예뻐해 주시던 너희 부모님의 행복해하실 모습도 떠올랐어. 자리로 돌아갔는데 벅찬 마음이 남아 눈물이 나더라. 내가 다른 사람의 좋은 일에 이렇게 함께 기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 놀랍더라. 비록 그게 다른 사람에게 오해가 되어 친구 합격 소식을 듣고 속상해 운 거인냥 말이 돌았지 별로 신경안썼어. 중요한 건  당사자인 우리, 우리가 공유하는 감정의 진실은 우리가 제일 잘 아는 거니까.



  대학에 가고 연애를 했지. 꿈꾸던 것과는 좀 달랐지만, 지금까지는 맺던 관계와는 다른, 그렇고 그런 사람생겨 설렜어. 늘 그랬듯 너에게 시시콜콜 얘기를 다 했어. 스킨십에 대해 말했을 때  어떡해 내 인생에 치명적인 오점이 생긴 듯 걱정하며 울었지. 푸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웃기다.  정도 가지고 울다니. 돌이켜보면  사회에서 주입된 순결에 대한 이미지가 우리 안에 있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남자 친구 얘기를 점점 줄였. 이야기를 더 하면 마치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았거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십 년이 훌쩍 넘는 동안 그 부분에 대해 얘기 거의 안 했다. 이제 결혼을 하니 우리 대화 주제도 다양해지려나?



 나와는 달리 넌 봉사활동에 관심을 많이 가졌잖아.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고 감명받아 생전 신부님이 우리나라에서 몸 담으셨던 살레시오 수도회에 꾸준히 다녔지. 나도 내전으로 폐허가 된 수단에 가서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신부님의 삶에 감동했지만 내 삶으로 이어지진 않았어. 너가 부르면 청소년 교화시설인 '살레시오'에 가서 아이들을 멀리서 보고, 수단에서 아이들이 내한했을 땐 악기 연주를 듣기도 했지. 고백하자면, 그 경험은 편견이 얼마나 두터운가 확인하는 시간이었어. 처음 소년범 수용시설에 갈 때 좀 아이들이 무섭게 느껴졌거든. 괜히 내게 해코지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말이야. 부끄럽다. 나와는 달리 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찾아가 다양한 세상을 마주했어. 주변 이웃들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네가 자랑스러웠어.  이후 박노해 시인의 나눔문화를 소개해줬을 때 믿고 따라간 건 그간 보여준 네 삶의 방향 때문이었을 거야. 내가 힘들 때 시인의 시들은 내게 큰 위로가 됐어. 너와의 인연에, 이 모든 경험들에 깊이 감사해.



 그런 네가 결혼을 한대. 남자 친구의 어떤 부분이 제일 좋냐는 물음에 넌 "날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 줘"라고 대답했지. 너의 얘기만 들어도 얼마나 꿀이 뚝뚝 떨어지는지 상상할 수 있어. 어디에 있든 서로를 향한 사랑의 눈빛에 주인공이 되는 두 사람. 네가 행복해 보여 나도 좋아. 가끔 넌 툴툴거리며 불안하다 이야기를 하기도 했.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 이 사람이 내가 생각하던 반려자가 맞을까' 런 의문은 결혼해도 계속해서 들더라. 남편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모르던 면이 보여.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니  잘못 선택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럴 땐 우선 그를 선택한 과거의 나를 믿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대화를 통해 이해의 접점을 넓혀가는 노력을 하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싶어.


 

 결혼  생활에는 사랑보다 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잖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일거야. 너와 내가 나눈 우정 정도면 슬기로운 부부생활에 충분해보여. 우린  다른 종교, 가치관 등을 존중했고, 서로를 진심으로 잖아. 내 삶의 고비에는 얘기를 경청해주던 네가 있었어. 소망하는 것에 대해 함께 나누고 성장을 응원하는 관계.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고 위하는 사이. 가끔 토라지고 오해가 쌓여도 믿음을 전제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말이야. 완벽한데? 그래도 혹시 싸우다가 홧김에 집을 나오게 된다면 내게 바로 연락해. 택시 타고 오면 우리 집 금방인거 알지. 맛있는 거 먹자. 이왕이면 집은 네가 차지하는 게 낫긴 하고. 농담인데 그래도 나름 든든하지?



 결혼 먼저 했다고 아는 척하는 것 같아 이제 줄여야겠다. 나름 결혼 이건 대체 뭘까 엄청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인데 나보다 넌 지혜로우니까 잘 살거야. 지금까지 한 말은 사랑하는 친구의 잔소리쯤으로 생각해줘. 며칠 후에 있을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이쁜 5월의 신부보러 일찍 갈게. 남편과 신혼여행도 즐겁게 잘 다녀와. 사랑해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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