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밴드 붐은 온다’는 문장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연 실리카겔이 존재한다. “록 붐이 아닌 실리카겔 붐이다”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밴드씬의 최전선에 선 팀, 한국대중음악상 3연패에 K-pop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멜론뮤직어워드 초청 및 베스트 뮤직스타일상 수상까지 거침없이 역사를 써내려가는 실리카겔의 음악을 알아보자.
새로운 것이 대중성을 가질 때 (feat. NO PAIN)
https://www.youtube.com/watch?v=qg40imnWXG8
지금의 실리카겔을 만든 곡은 단연 ‘NO PAIN’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찾아볼 수 없고 마이너한 장르로 여겨지던 사이키델릭/익스페리멘탈 포스트 모던 록을 주로 하던 이들이 자신들만의 음악색에 대중성을 더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NO PAIN’. 이전까지는 거부감이 느껴지던 생소한 음악에서 익숙하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대중적 멜로디가 들리자 사람들은 이들의 음악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생소한 사운드들에도 점차 빠져들었다. 새로운 것이 대중성을 가질 때, 시대에 남을 명곡이 탄생한 것이다.
귀 썩는 쇠 맛 음악 (feat. Kyo181)
https://www.youtube.com/watch?v=vMCx317L3z0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수상 소감에서 ‘귀 썩는 음악을 계속 해보겠다’던 그들의 포부는 군백기 후의 활동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보이스 이펙터로 마치 기계음 같은 소리를 내는 보컬, 퍼즈/디스토션/쉬머 등 다양한 이펙터를 활용한 ‘쇠 맛 나는’ 왜곡된 기타 사운드들은 실리카겔만의 ‘귀 썩는 음악’을 만들었다. 이질적인 사운드에서 낯섦을 느끼던 사람들도 점차 이 쇳소리의 매력을 깨닫고 한껏 귀를 썩히기 시작했다.
날카로움 속 따뜻함 (feat. Mercurial)
https://www.youtube.com/watch?v=JYLIzOpVRsg
이 차갑고도 날카로운 기계 소리들에서 역설적이게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사운드의 질감은 매우 거칠고 왜곡되어 있지만 코드나 멜로디의 구성, 가사의 내용 등은 따뜻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거칠고 뾰족하지만 항상 아프지만은 않은, 시니컬하고 퉁명스럽지만 상냥함을 가진 역설적인 실리카겔의 음악은 시청각적으로 쾌감을 제공하면서 우리의 감성을 툭 건드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Mercurial’은 라이브에서 주로 키를 낮춰 공연하는데 그래서 더욱 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팬들의 떼창으로 함께 만든 해당 라이브 무대는 그 따뜻함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영상.
킬링포인트 : 춘추 보컬 (feat. Realize)
https://www.youtube.com/watch?v=XiXlW710I-U
주로 보이스 이펙터를 활용해 거친 매력을 보여주는 김한주의 보컬 대신 가끔 등장하는 김춘추의 보컬은 실리카겔의 킬링포인트 중 하나이다. 강렬한 기타 연주 뒤에 나오는 부드럽고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주는 의외성은 처음 들을 때 꽤나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부드러운 매력의 춘추 보컬에 빠져 있을 때 치고 나오는 김한주의 거친 보컬은 상반된 느낌의 대비를 통해 더욱 다이나믹한 음악을 완성한다. 다른 곡들에서도 라이브 때 간간히 등장하는 춘추 보컬을 원곡 음원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3분에 달하는 기타 솔로를 넣을 수 있는 자신감 (feat. Tik Tak Tok)
https://www.youtube.com/watch?v=DIPxnt5vnhU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실리카겔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못박은 ‘Tik Tak Tok’은 ‘김춘추의 기타 차력쇼’로 큰 화제를 낳았다. 이미 이전에 ‘Desert Eagle’에서 2분이 넘는 기타 솔로로 주목받고 매 곡마다 귀에 꽂히는 톤에 피치 시프터까지 활용한 화려한 기타 솔로들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은 그는 ‘Tik Tak Tok’에서 3분이 넘는 솔로로 기타 맛집 타이틀을 완전히 새겼다.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의 솔로 연주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휘몰아치는 파노라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지리스닝과 짧은 러닝타임이 주류가 된 현 음악 트렌드 흐름을 역행하는 이 당당함은 음악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스스로 그 긴 음악을 찾아듣게 만들었다. 매 라이브마다 다른 버전의 솔로를 보여주고 황소윤의 피처링 파트를 김춘추가 부르는 것도 관전 포인트. 참고로 ‘T’와 함께 들어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듯한 틱택톡은 합하여 7분30초가 되는 길이에도 같이 들어야 할 가치가 있다.
춘추에 가린 건재의 진가 (feat. Apex)
https://www.youtube.com/watch?v=1VXjue62OrQ
김춘추의 화려한 기타 연주와 움직임으로 시선을 빼앗기기 일쑤지만 그 뒤에서 미친 듯이 드럼을 ‘후리는’ 김건재의 진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틱택톡에서 김춘추의 솔로에 맞춰 화려한 드럼 연주를 보여줌에도 기타 솔로가 너무도 강렬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은 것이 아쉬웠는지, 후속 앨범의 ‘APEX’에서는 김건재가 2분이 넘는 드럼 솔로로 곡을 채웠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솔로 연주가 끊이지 않는 것을 듣다 보면 정말 체력이 걱정될 만큼 파워풀하고 에너지 넘친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라이브에서 음원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보여주는 것도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부분 중 하나. 실리카겔의 라이브에서는 그러한 이유로 김건재의 드럼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놀토 추천 1순위 가사들 (feat. Desert Eagle)
https://www.youtube.com/watch?v=IWYft_hOIgo
실리카겔의 앨범이나 뮤비들에 꼭 빠지지 않는 댓글 중 하나가 “<놀라운 토요일> 섭외 1순위 곡”이다. 가사를 봐도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이질적인 가사가 노래를 듣고 가사를 맞추는 해당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 이는 발음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부분에 더 집중하는 실리카겔의 작사 방식에서 비롯된다. 사운드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허밍하다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단어들 중심으로 작사하고 그 단어들이 조합된 문장이 나오면 말맛이 잘 살지 않는 부분들을 조금씩 수정해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노래 가사로는 찾아보기 힘든 단어들의 조합을 보게되는 것이다. ‘NO PAIN’ 이후로는 내용의 전달에도 신경을 쓰는데 이렇게 생소한 단어들로 구성된 가사들이 실리카겔 음악의 또 다른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각자만의 다른 무언가를 경험하고 느끼게 하는 음악 (feat. Ryudejakeiru)
https://www.youtube.com/watch?v=kuShoImM5jw
팀워크보다 팀플레이를 지향하는 실리카겔은 관객들이 자신들의 공연을 보았을 때 각자만의 다른 무언가를 경험하고 느끼게 하는 음악을 추구한다고 한다. 장르에서도 한계를 두지 않고 각자의 활동도 음악을 넘어 영상으로까지 다양하게 시도하는 이들은 어떠한 잣대에 맞추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시도들과 생각지 못한 협업들을 통해 자신들의 색을 확립하고 화려한 영상과 탄탄한 라이브로 공연에서 음원 그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들의 ‘Brave New Sound’가 계속해서 불러일으킬 효과들을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이유이다. 실리카겔 붐은 왔다. 이제 모른체하기엔 많이 커버린 이들의 음악, 들어보지 않겠는가.
-Written by.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