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듯한 먹먹한 목소리, 한 편의 시 같은 가사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얼얼하게 만드는 이가 있다. 바로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이다. 인디 노래 플레이리스트 혹은 봄노래 플레이리스트에 노래 ‘Yours’로 자주 등장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사랑을 할 때 느끼는 불안한 마음을 자장가 같은 편안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게 매력적인 데이먼스 이어. 그의 명곡들을 알아보자.
'Yours’는 10대의 짝사랑, 좋아하는 사람과 잘되고 싶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담은 노래라고 데이먼스 이어가 인터뷰에서 밝혔다. 좋아하는 사람을 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을 때도 항상 생각하고 있으니 내 시간은 그 사람의 것이라는 뜻에서 제목을 ‘Yours’라고 지었다는 데이먼스 이어의 말에서 그의 낭만이 느껴진다. 데이먼스 이어의 말만큼이나 ‘Yours’의 잔잔하게 깔리는 전주는 듣기만 해도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화사한 앨범커버만큼이나 노래에도 봄 햇살 같은 따스함이 가득 풍겨 나온다. “내가 손을 잡을게 / 너는 힘을 빼도 돼”라는 가사에서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데이먼스 이어는 시적인 아름다운 가사로 인정받고 있는데, 뎀어리(데이먼스 이어의 팬들을 칭하는 말)들도 데이먼스 이어의 노래 중 좋다고 많이 꼽는 가사이기도 하다. “그대여 난 / 솔직히 좀 싫어 / 그대는 내가 없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게” 라는 가사에서 상대에 대한 투정도 솔직하게 토로하는 소년 같은 면모가 두드러지는 노래다.
데이먼스 이어는 자신이 머물렀던 곳의 지명으로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노래 ‘Busan’과 ‘Auburn(미국 남동부, 앨라배마주에 있는 도시)’이 바로 그 노래들이다. 원래 지내던 곳에서 떠나 다른 곳에서만 느끼는 그때의 감정을 남기고 싶어서 만든 노래라고 밝히기도 했다.
‘Auburn’의 몽환적인 악기 소리 때문에 듣는 동안 아름다운 낯선 곳에 머물러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 나는 왜 그대가 그럴 것만 같을까요”라는 가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데이먼스 이어의 아련하고 담백한 음색 때문에 추억에 빠져 새벽에 전 남친, 전 여친에게 연락하게 되는 마력을 가진 노래이니 주의가 필요하다. (노래는 죄가 없다…)
‘Cherry’는 연애에서 갑과 을이 바뀐 상태를 이야기한다. 제 멋대로인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는 상태를 “난 정말 바보”라는 가사와 함께 재치 있게 표현한 곡이다. 음울한 목소리와 상반되는 발랄한 사운드가 귀엽다. 애인과 감정싸움에 지쳐 ‘포기! 네 맘대로 해라’하며 항복하는 남자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데이먼스 이어는 무게감 있는 잔잔한 노래를 주로 해서 ‘Cherry’를 듣는다면 잘 듣지 못했던 그의 발랄한 음악에 체리 맛 소다를 마신 것 같은 상쾌함과 색다른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재워’는 데이먼스 이어의 데뷔곡이다. 분명 자극적인 사운드가 아닌데도 감수성을 들춰내는 가사 때문인지 듣고 나면 알싸한 느낌이 맴돌아 여운이 짙게 남는다. 그래서 데이먼스 이어의 노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자극적인 노래였다. “나의 아픈 마음과 나의 슬픔 모두 / 재워”라는 가사에서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마지막 코러스 들어가기 전 나오는 ‘쿵’ 소리가 노래를 들으면서 천천히 고조되던 감정선을 훅 올려주는 좋은 포인트이다.
창문’은 데이먼스 이어가 성경을 읽다가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고 한다. 노래의 말미에 나오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네”는 고린도전서 13장 4절을 가사로 만든 것이다. 전주에 깔리는 피아노 소리와 애달프게 내지르는 데이먼스의 목소리는 음산하고 조금은 무섭기까지 한 분위기를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 소유욕, 사랑을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함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의 성경 구절로 그 모든 위태롭고 위험한 감정들을 애써 성경 구절로 잠재우는 모습이 연상된다. 새빨간, ‘HELP ME!!’라는 문구가 있는 ‘창문’의 앨범커버도 노래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잠들지 못하는 달 밝은 밤에 어울리는, 한 편의 소설 같은 노래이다.
쿵쿵 내려앉는 건반 소리와 함께 데이먼스 이어는 ‘Salty’는 잊혀지는 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노래한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노래를 이어가는 걸 듣고 있다보면, 슬픔을 꾹꾹 누르는 배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진다. 검은 배경에 작은 빨간 십자가 하나가 있는 ‘Salty’의 앨범커버를 보면 “지워지면 내가 잊혀지면/ 나는 어디론가 떠날 준비조차/ 하지 못한 채로/ 거릴 헤매겠죠” 라는 가사처럼 밤에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다 마주친 빨간 빛을 내는 십자가를 본 것처럼 공허한 마음이 들게 한다. 피아노와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저릿한 느낌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데이먼스 이어가 확실히 감각 있는 아티스트라는 게 느껴진다.
영원한, 노래하는 소년
출처 멜론
데이먼스 이어는 94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소년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노래도 그를 닮아 어느 주제의 노래이든 소년 같은 풋풋함, 낭만, 불안감이 느껴진다. 데이먼스 이어의 목소리는 맑으면서도 무게감이 있어서 매력적이다. 데이먼스 이어의 노래에 빠져들게 되면 그가 노래하는 깊고 깊은 감정에 심취하게 된다. 괜찮은 인디 노래를 찾고 있다면 데이먼스 이어의 노래를 한 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없던 감수성도, 현생에 치여 덮어놨던 감정들도 슬그머니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