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다
말에도 격이 있다는 말을 최근 실감하고 있다. 사납고 험한 말이라도 마음을 움직이거나 감흥을 주는 사람의 말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무의미하거나 진심이 아님을 알고는 실망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하지 않아도 됐을 말들을 상대에게 했다.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매번 기대를 갖고 관계를 지속시켜보고자 했으나 결국 그 실망이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 조차도 낯선 말들을 해대고서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기를 바랐다. 그러고는 얼마간 몰아치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지우려고 애먹었다. 괜찮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마음이 답답해지는 말들을 들었다. 의중을 떠보는 질문들과 처음 들어보는 비하의 말을 늘어놓는 내 앞의 사람에게 많이 놀랐다. 나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상대가 선택한 단어들로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실감했고 그의 삶이 그런 말들로 점철된 이유를 이해해보기로 했다.
말을 잘하는 이들 중에는 주변의 관계들과 소통하기 위해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생각의 깊이가 반영된 말들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나는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다. 물론 가르친다고 다 선생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뼈저리게 느꼈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을 포함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든 자기가 좋아서 선택했든 타고난 말 주변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말만 많은 치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눈치도 빠른 데다가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생각을 앞서 하는 말들 조차도 탁월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말로 먹고 사는 이들이었다. 사기꾼도 말을 참 잘한다. 사실 사기꾼과 직업으로 말 잘하는 이들의 구분이 힘들 때도 있다. 다만 내가 겪은 사기꾼들은 말의 목적이 대부분 금전적인 것으로 귀결되거나 상대의 처지를 이용해서 무엇인가 얻고자 했다. 그래서 말 잘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지만 어느 때엔 무섭기도 하다.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상처에 쓴 물 붓는듯한 말은 안 하고 싶은데 강하지 못하다. 흔히들 멘탈이 약하다고 하던데 내가 그렇다. 속상한 마음을 속상할 말로 되받아치고는, 속이 더 심난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한다.
그럴수록 열흘을 침묵으로 지내야 했던 묵언수행의 시간이 떠오른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의중을 알 수 없었다. 말은 없고 행동만 있으니 함부로 상대의 마음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 말이 오가는 열흘이었다면 그 안에서 상처와 오해를 많이도 낳았을 텐데 묵언의 시간은 자주 미소 짓고 더 자주 고개를 끄덕이게 했었다.
진정 말을 잘하는 것은 상대방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나와는 하나도 같지 않은 당신의 삶의 역사를 말이다. 험한 말을 뱉었던 나도, 내게 말로 상처 준 그도 눈 앞의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말로 예의를 벗어난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제발 더 많이 경청하고 기다리자. 말과 글로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 꿈이고 무엇보다 말에 마음이 닿는 그 순간의 희열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