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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Nov 26. 2023

아일랜드 유랑기(3)

가자! 오코넬 스트리트로!

더블린에서 첫날 저녁에 나는 그곳에서 유일한 한국식당을 찾았다. 천운이었다. 드렁큰피시라는 식당이었는데 한국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이라고 했다. 삼겹살, 중화요리, 분식, 한식 등을 골고루 팔았다. 나는 과감하게 육개장을 선택했다. 25,000원가량 지불을 하고 육개장을 먹으니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타국에서 먹는 한식 치고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와서 다시 숙소 앞을 걷는데 잠이 쏟아졌다. 이른 저녁부터 나는 수면에 들어갔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나는 잘 씻고 나와서 기분 좋게 더블린의 거리를 걸었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아름다웠다. 더블린 시내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면서 다짐했다.


"더블린에 있는 펍을 최대한 많이 가봐야지!"


이러한 생각으로 더블린 중심부로 향했다. 어느 곳에 서고 기네스간판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멋들어져 보이는 펍을 발견했고 나는 아침부터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기네스 한잔을 주문했다.

1821년부터 운영되던 펍이었다. 더블린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사진으로 남아있었고 펍에는 맥주뿐 아니라 각종 아이리쉬 위스키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바텐더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면 꽤나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자 자기는 바텐더의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백인에다가 아이리쉬 악센트의 영어를 사용하면 유니크한 탓에 희소성가치로 취업도 잘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여자친구를 쉽게 사귀는 건 덤이고 말이다. 바에 앉아 옆을 보니 아저씨 한 분이 나처럼 기네스를 마시고 있었다. 서로 눈짓으로 인사하고 나는 한국에서 왔다는 소개를 했다. 한국이라 하니 영국축구를 많이 보는 아일랜드인으로써 손흥민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나 보다. 손흥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아저씨는 자리를 옮겨 내 옆에 앉아 기네스를 두 잔 더 주문하셨다. 내 것까지 말이다.

그 아저씨 한분으로 아일랜드인 전부를 판단할 수 없었지만 내가 느낀 아일랜드 아저씨는 이방인들에게 적대감이나 경계심을 갖지 않고 친근하고 따뜻하며 개방적이었다. 기억하기 싫지만 공항에서 만난 무례한 프렌치들과는 달랐다. 아저씨는 자신이 63년생이라고 말씀하셨고 젊어서 건설일을 하셨다고 했다. 지금은 은퇴 후의 삶을 즐긴다고 하시기도 했다. 나도 신세만 질 수 없어 기네스 두 잔을 또 주문해서 아저씨에게 대접해 드렸다.

아저씨가 현재 아일랜드 더블린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청년들은 날이 갈수록 집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젊었을 때는 노력만 하면 자가를 소유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절망적이라는 말을 하셨다. 아저씨는 아일랜드인은 기네스를 정말 사랑하며 자신은 젊어서 막일을 할 적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여섯 잔씩 마시고 높은 골조에서 작업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음주 중 작업은 건전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나라 노가다 아저씨들과 다름이 없는 것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펍의 벽면을 보니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에 관한 흔적들이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IRA 군인의 모습이라든가 군복들 말이다. 나는 조심스레 마이클 콜린스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한국도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말을 했다. 아저씨는 동양에서 온 한 꼬마 같은 청년이 마이클 콜린스 이야기를 하자 꽤나 놀라는 눈치였다. 개인적으로 아일랜드의 무장봉기와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 오늘날의 IRA 또한 일정 부분 긍정한다고 내 의견을 전달했더니 티는 안 내셨지만 은근히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기네스 몇 잔 들으키신 아저씨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펍에서 파는 펍의 전경이 그려진 티셔츠를 나에게 사주셨다. 기념할 만한 것이 될 거라고 말이다. 나도 질 수 없어 마지막으로 기네스를 한잔 더 주문해 드렸다. 그리고 그 마지막잔을 급하게 들이켜시고 쿨하게 굿바이를 외치며 갈길을 가셨다.

나의 아일랜드 펍 투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맥도날드 빅맥을 간단히 섭취 후 더블린 중심부를 걷고 또 걸었다. 죄다가 펍이었다. 트램들이 정겹게 선로 위를 다녔고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이었다.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는 펍을 방문했다. 노래를 잘하시는 분이 팁을 받으면서 공연을 하는 펍이었다. 노래를 듣는 비용이 있었기 때문에 숙소 근처의 술값보다 좀 더 비쌌다. 나는 역시 기네스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노래를 듣고 밖의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주머니에 2유로의 동전이 있는 탓에 팁을 주며 노래 한곡을 부탁했다.


'tears in heaven'


부탁을 하자 가수께서는 어려운 노래라 될지 모르겠다며 열창을 해주셨다.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 나 스스로가 참 출세했다고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 나보다 공부 잘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애들 중에 아직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못 와본 애들은 많을 거란 생각에 우월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 혼자 넓은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백인 가족무리가 나에게 다가와 옆에 합석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발음과 엑센트를 들어보니 아일랜드나 영국사람은 아니었고 출신을 물어보니 이탈리아 로마 사람들이었다. 아들이 여기서 유학 중인데 가족들이 방문겸 여행을 왔다고 했다. 화기애애하게 합석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유벤투스와 델 피에로 이야기를 꺼냈더니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가족들 전부가 AS로마 팬이었고 망할 토티놈의 팬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저 구석에서 조용히 나의 이야기를 듣던 이탈리아 삼촌이 나에게 2002년에 우리를 상대로 골을 넣은 한국선수 아냐고 물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고 나는 그 사람이 안정환해설위원을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곧바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7대 1의 쪽수였기에 자부심 있는 목소리를 냈다간 화를 면치 못할 거 같아서 비굴하게 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급하게 마무리하고 숙소옆 낡은 펍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숙소옆 첫날 왔던 펍으로 가서 또 기네스를 시켰다. 노인분들이 가득가득했고 전날 아침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갑자기 노래가 하고 싶었다. 그 노래는 아일랜드 민요 같은 것이었고 난 그 노래를 3절까지 부를 줄 알았다. 펍에서는 누구든지 흥이 차오르면 노래를 부르곤 했다.


'Feilds of athenry'


내가 그곳에서 정성을 다해 부른 곡이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감자대기근으로 인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지주의 옥수수 한 줌을 훔친 죄로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를 두고 죄수의 신분으로 호주로 끌려가는 마이클이라는 청년이 아내에게 자녀들을 고결함 속에 키워달라는 당부가 달린 노래였다. 그래서 내가 아일랜드에 있던 그날에도 아일랜드인은 영국인이라면 바득 바득 이를 갈았다.

저 뒤로 보이는 꽉 찬 기네스는 내가 노래를 부르고 난 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공짜로 사준 기네스였다. 노래의 답례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양에서 온 꼬마가 자신들의 한이 담긴 노래를 부르니 기특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에게 준 종이태그였다. 아일랜드 군인을 상징한다고 했고 아일랜드공화국군과 결을 같이 한다고 했다. 내가 장난기가 들어 마가렛 대처에 대해 어찌 생각하냐고 했더니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주셨다. 알딸딸한 기분에 또 장난기가 올라 하이네켄을 맛있게 드시고 계신 할머님에게 대처수상 사진을 보여주며 아시냐고 물었더니 꺼지라는 표현과 함께 사진을 치우라고 하셨다. 그랬다. 아일랜드인은 여전히 영국인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렇게 아일랜드 어른들과 즐겁게 조크를 나누고 다시 급한 걸음으로 한식당으로 갔다. 18,000원짜리 김치우동을 먹었다. 이유는 그날 나는 기네스를 여섯 잔이나 퍼마셨기 때문이었다.  속을 달래야만 했다.  그날의 경험들이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그 나라의 사람들은 따뜻하고 정감 있으며 포근했다.

(숙소에서 바라본 전철 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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