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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Nov 27. 2023

아일랜드 유랑기(4)

기네스 박물관 탐방

다시 아침을 맞이했다. 평소 해리 포터라는 책과 영화를 토마스 트레인보다 수준 낮게 여겼던 나는 그다지 그 소재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트리니티 대학교 안에 있는 도서관은 해리 포터의 촬영장소였고 꽤나 유명한 곳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그냥 시내에 있는 대학교 도서관에 들어가듯 들어가면 될 줄 알았는데 인터넷으로 입장하는 사람에게 예약을 받고 유료로 비용을 지불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시큰둥 해져서 발길을 돌렸다. 트리니티 대학교 안에 있는 저 동상의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 같아서 찍어 두었다. 엊그제 흐린 날씨와 다른 화창한 날이었기에 또 다른 기분이 그 대학교 안에서 들었다.

이 할아버지도 유명한 사람처럼 보여서 찍어두었다. 공상을 해봤다. 우리 가정이 엄청난 부호이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저런 대학교에서 유학을 하는 거다.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국제 정세에 대해 토론하고 논리로서 많은 서양 학생들을 이기는 상상 말이다.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에 반해 동서양의 여자들이 나에게 추근대는 상상을 해본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은행 경비원이었다. 이성과의 자리에서도 직업만 이야기하면 그냥 자동으로 걸러지는 직업말이다. 상상은 공짜니까 흐뭇한 상상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더블린에서 택시라는 것을 처음 타봤다. 왜냐? 기네스 박물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으레 이런 상황을 겪으면 택시기사 아저씨가 바가지를 씌우지 않을까? 걱정하기 마련이지만 정직하시고 착하신 아저씨는 최단거리로 비용이 적게 나오는 거리로 날 안내해 주셨다. 역시 따뜻한 나라! 아일랜드였다. 택시비용이 한국보다 다소 비쌌지만 기분 좋게 비용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잔돈을 받았다. 

(기네스 박물관 입구)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관리인 아저씨가 혼자냐고 묻더니 너는 그냥 들어가라고 줄을 안 서고 바로 들어갔다. 프랑스나 영국이었다면 맨 꼴찌로 들어갔겠지... 박물관으로 들어가 입장료를 35,000원 정도를 낸 것 같다. 

이 사람이 기네스 맥주를 만든 '아서 기네스'라는 사람이다. 입구에 소개글이 이렇게 있었다. 박물관은 계단식으로 되어있었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기네스의 역사라든가 만드는 방법 그리고 만드는 기계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역사 같은 것들이 소개영상으로 나왔다.

(예전 기네스 맥주잔들)

(예전 광고 포스터들)

드디어 꼭대기에 왔고 입구에서 받은 쿠폰을 주면 기네스를 한잔 따라준다. 동화 속 같은 더블린의 시내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마시는 기네스로 인해 11년 11개월 동안 은행에서 일하면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몸과 마음에 난 상처들이 회복되는 듯했다. 한참을 멍하니 더블린 구석구석을 바라보았다. 저 주택 그 안에서는 누가 살고 어떤 엄마와 아빠가 살며 어떤 어린이가 살고 있을까? 그 아이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행복하게 자라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기네스 공장을 나와 따뜻한 봄빛아래서 가보지 못한 마을을 걷고 또 걸었다. 소박한 주택가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들었다. 문득 이런 곳에 월세방을 얻어서 마트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것도 참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마 내가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취업을 하게 된다면 아일랜드 외곽으로 가서 트랙터를 몰고 양을 치며 똥 치우고 볏짚을 관리하는 청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길을 아무 데고 걷다가 배고파 들른 전통식당이었다. 소고기스튜였다. 배고픈 게 반찬이라고 막상 맛을 보니 나쁘지 않았다. 걸쭉하고 담백한 게 아주 좋았다. 약간 감자탕 먹는 느낌도 나고 말이다. 덜 매운 감자탕! 그렇게 기네스를 또 마시고 점심을 느긋하게 즐겼다. 서빙을 하시는 분이 터키분이었는데 당신들은 한국전쟁 때 우리 선조들을 도왔고 당신은 우리의 형제의 나라입니다!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그 터키인도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말했다. 순간 외교관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보급한 성 패트릭을 기념하기 위한 성 패트릭 성당이었다. 노트르담이나 베드로성당보다는 큰 것 같지 않았다. 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했다. 종일 걸었더니 피곤이 몰러와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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