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를 퍼마셔라!
숙소문을 걸어 잠그는 시간이 오기 전에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게 되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전부다 서양인들이었다.
저 캡슐이 나의 보금자리였다. 좁았지만 편안했고 쾌적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샤워를 하면 수면자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서 발만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머릿속이 멍했다. 시차 때문에 몸이 적응을 못해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23시간 만에 몸을 눕혀보니 너무 편안했다. 그리고 바로 잠들었다.
여섯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숙면을 해서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숙소는 호스텔이었고 캡슐은 여섯 개였다. 그리고 한국처럼 유교걸 유교보이가 가득한 나라가 아니었기에 전부 혼숙이었고 혼숙이라는 표현이 불온할 정도로 아무 거리낌 없이 남자와 여자가 섞여 지냈다. 나도 그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아침이 되면 얼마나 예쁜 서양인 여성들과 말을 섞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잠에서 깨어 귀를 열어보니 여성의 영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커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용기를 내서 그 여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Hi"
엄청나게 미인이었고 또한 섹시한 잠옷차림의 캐나다 여성이었다. 흡사 '카야 스코델라리오'를 보는 듯했다.
'주여!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한국에서 온 나를 전심으로 반겨주었고 마음을 열고 대화에 임하는 모습이 나의 마음을 정말 달콤하게 적셔주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일어나서 숙소 1층으로 가보니 한국돈으로 12,000원 정도를 받고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그 유명한 아이리쉬 브레이크퍼스트(?) 좀 비싸긴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퍼다가 먹었다. 많은 서양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물론 나는 혼자였으니까 말없이 식사만 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타국에 왔다는 것이 드디어 실감이 났다. 나의 아일랜드 여행계획은 무계획이 계획이었다. 더블린에서 일주일 그리고 골웨이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며 영감을 얻어 가고 싶었다.
무작정 뛰쳐나와 더블린 시내를 걸었다. 엄청 번화하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생각했건만 의외로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의 도시였다. 평화가 그곳에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 다정함도 발견했다. 아무래도 유럽이다 보니 원하는 구단의 축구티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쇼핑몰을 찾았지만 결국 그곳을 찾고 느낀 건 한국의 신세계백화점과 용산 아이파크몰 그리고 스타필드가 인류 최고의 쇼핑센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티셔츠를 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할 일을 알게 되었다. 바로 아일랜드의 상징적인 곳! 펍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숙소 바로 옆에 오래된 펍이 하나 있었다. 허름했다. 오전 시간부터 문을 열었고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tv를 보거나 신문을 읽고 대화를 하고 계셨다. 내가 원하던 로컬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이 정말 행복했다.
나도 기네스를 하나 시켰다. 여행 중 만난 아일랜드 아주머니에게 BEER라는 표현을 썼다가 눈치를 먹었다. 곧바로 하시는 말씀이 NO! it is stout!라고 말하시더라! 아침부터 기네스를 퍼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한국돈으로 7,800원 정도 하는 것 같았다. 옆에 나이가 족히 85세는 되어 보이시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그곳에 동양인은 나뿐이니까 나더러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더니 우리나라에 대한 정보가 없으신지 그냥 빙긋 웃고는 잔을 비우고 나가셨다.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발길이 닿아지는 대로 트리니티대학교로 가봤다.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서울대라고 치면 된다. 그러니까 나 같은 애는 수능을 백날 봐도 수리영역 1이 9점이기 때문에 절대로 못 가는 학교란 말이다. 유럽 각국에서도 유학을 온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아 맞다! 사뮈엘 베케트 아저씨가 이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해리 포터라는 영화도 이곳에 있는 도서관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지식과 지혜의 냄새가 내 콧속으로 마구 파고들어 나의 폐를 팽창하게 했다. 나도 덩달아 유식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TV에 유학을 가는 장면이 나올 때 무지하게 부러워했던 생각이 났다. 저런 곳에 다니고 졸업해서 근사한 직업을 갖고 명함을 파면 자존감이 꽤나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비원으로 출세해서 이런 곳에 왔다는 게 참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졌다.
벤치에 앉아서 멍을 때렸다. 어떤 아저씨는 잔디 깎는 기계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나의 멋을 상하게 해서 짜증 났다. 어렸을 적 TV나 영화로만 보던 외국에 나와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 순간 나에게 주어진 숙제는 유독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식당이 적은 나라에서 한식당을 찾는 일이었다. 비행기 타고 오면서 먹은 음식과 낮에 먹은 핫도그로 인해 이미 서서히 양식을 거절하는 신호가 내 몸에서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