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다! 너희들은 잘 있어라!
나는 올해 마흔세 살의 노총각으로써 11년 11개월을 은행경비원으로 살았다. 날이 갈수록 감정노동을 하는 게 고통스러워 몸부림쳤고 고객들의 갑질과 직장상사의 하대에 몸과 마음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만약에 내가 퇴사를 한다면 모든 걸 제쳐두고 조지 버나드 쇼의 나라! 마이클 콜린스의 나라! 아일랜드로 떠날 것이라는 막연한 소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러다가 내가 일하던 지점이 폐점이 되면서 자연히 나의 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폐점이 발표되던 순간 나는 더블린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알아보았고 이런저런 가격 검색 끝에 에어프랑스와 에어링구스를 통해 아일랜드를 가기로 결정을 봤다.
가는 날 아침! 기분 좋게 공항에 들어가 비행시간을 기다렸다. 이른 시간의 비행이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공항을 찾았다. 더 이상 고객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모든 걸 뒤로 한채 어디론가 떠난다는 설렘이 나의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그리고 각국의 승무원들을 보며 안목의 정욕을 마구마구 채웠다. 비록 낮은 사회적 계급의 경비원이었지만 공항에 있는 날 보니 순간 사회적 신분이 상승한 듯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보라! 저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장엄하지 않은가?
우선 비싼 표를 끊은 사람부터 자본주의의 나라답게 차례대로 태웠다. 나는 가난한 이코노미니까 마지막 순서로 탔고 내 옆으로는 벨기에에서 온 커플이 탔다. 개인적으로 에어프랑스를 타며 기대가 컸다. 소피 마르소나 레아 세이두 혹은 마리옹 꼬띠아르 같은 승무원들이 날 반겨줄 거라 생각했는데 전부 어머님들하고 이모님들이었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다 보니 나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기내식이나 잘 얻어먹자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이내 비행기가 뜨고 난 옆 커플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국에 여행을 온 커플이었고 잡채가 제일 맛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기내식을 먹긴 먹었는데 느끼하고 기름져서 그냥 인내심을 가지고서 먹었다. 남자승무원분도 있었는데 그분에게 어느 축구팀을 서포트하냐고 묻자 올림피크 리옹이라고 했다.
샤를 드골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1 터미널을 찾았는데 나는 동네 시외버스터미널을 생각하고 걸어가려고 했는데 시디발이라는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줬다. 시디발을 타기까지 이리 걷고 저리 걷고 영어로 물어보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불어로 대답하는 오만한 프렌치들에게 공포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여행자의 신분이다 보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표를 발권하는데 프랑스 공항직원 아줌마가 내가 도움을 청해도 성의 있게 대답하거나 마음을 다해 도와주지 않고 나를 귀찮게 여겼다. 다른 백인들에게는 친절했는데 나는 없는 사람 취급해서
"그러니까 니들이 2차 대전 때 독일한테 농락을 당한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분란을 일으키지 싫어서 표를 부랴 부랴 발행해서 아일랜드 저가항공인 에어링구스에 몸을 싣었다. 내 옆좌석의 남자와 토트넘의 쌍권총 "로비 킨"이야기를 했는데 낯선 동양인이 자신들의 축구영웅 이야기를 하니까 신기했던지 미소가 만연했다.
1시간 30분가량을 더 비행해서 난 드디어 나의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착륙했다. 비가 오는 날씨가 마음에 들었고 여행자의 고독을 느끼게 해 주었다. 호스텔을 찾아가기 위해 이리 묻고 저리 물어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비용을 지불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 대중교통 비용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에 타서 옆에 앉은 인도청년과 대화를 했는데 내가 어디서 내려야 할지 그리고 자신의 꿈이며 자신의 유학생 신분에 대한 이야기를 경계 없이 잘 나누어 주었다. 따뜻한 인도청년이 참 감사했다. 그리고 버스는 날 더블린 중심부에 내려줬고 나는 내리는 비를 뚫고 체크인을 위해 숙소로 뛰고 또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