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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Dec 11. 2023

아일랜드 유랑기(13)

다시 만난 시오반!

시오반이 또 내가 있는 골웨이까지 와주었다. 착한 여자사람친구다. 한국에서 지낼 때도 영어를 잘 가르쳐 주었고 사람들에게 경계심이나 낯설어하는 표현 같은 건 잘하지 못했다. 실은 시오반은 한국어를 나만큼 한다. 어학당을 한국에서 다녔고 한국에서 지낸 시간이 꽤나 길었으니 말이다. 이 친구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한식을 참 좋아했다. 그중 서양인들은 소화하기 힘든 된장찌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곳은 나의 친구가 다니던 대학이다. 친구가 무엇을 전공했는지 대학시절에는 어찌 지냈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대학을 다니는 동안 골웨이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골웨이의 지리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학벌의 열등감이 강한 나로서는 이런 멋진 대학들을 보면 나도 그곳의 일원이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흡사 호그와트 같지 않은가? 이런 상상도 해본다. 나는 저 대학의 청소부다. 대학생들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물리나 수학문제를 청소부인 내가 몰래 풀어서 복도 칠판에 놓는 것이다. 학생들은 전부 놀라고 교수도 놀라서 해답을 찾은 학생을 찾아보지만 결국 찾을 수 없다. 조용히 청소를 하던 나는 그들의 웅성임을 즐긴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아닌가? 학벌에 대한 후회가 남는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심하게 당해서 강박증에 걸렸었고 고교 3년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강박증에 걸리면 상쇄행동이라는 걸 하게 되는데 하루 종일 그것을 하면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꾸준한 불량배들의 폭력도 견뎌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대학에 갈 수 없었고 꿈도 펼칠 수 없었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많이 남아서 저런 멋진 대학을 볼 때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 근사한 상상을 하곤 한다. 

(중앙 건물 안으로 들어온 학교의 모습이다.)

만약에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유학을 갔다면 난 무엇을 전공했을까? 아마 경제학이나 사회학 혹은 철학을 공부했을 것 같다. 교복느낌의 옷을 입고 책을 들고 바쁘게 저곳을 뛰어다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대학을 안내하는 글인데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시오반과 점심을 먹으로 이동했다. 대학 때부터 다니던 피시 앤 칩스 식당이 있다고 하길래 따라갔다. 갔더니 사람들이 참 많았다. 흔히들 피시 앤 칩스를 생각하면 영국이라고 하는데 아일랜드에서도 동일한 것을 팔았다. 대구를 튀겨서 파는 것 같았는데 그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며칠 때 국과 쌀밥을 구경 못해서 죽어가는 나였는데 생선튀김을 먹으니 그나마 한식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살 것 같았다. 김치랑 밥 한공기만 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시오반이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해안 쪽으로 걸었다. 마치 군인이 무장행군 하듯 말이다. 내가 처음에 바다를 향해 걸었을 때  보다 훨씬 먼 거리를 걸었다. 날은 흐렸고 비는 추적추적 내렸다. 그렇지만 그 쓸쓸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방랑자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고 오늘이 지나면 나는 이제 시오반이라는 여자 사람 친구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여자 사람친구 시오반 양! 자세히 보면 양말을 짝짝으로 신었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렇고 싶었단다. 

시오반이 사준 생선튀김을 맛있게 먹고 바다를 하릴없이 거닐었다. 오랜만에 본 바다가 시오반은 참 좋았나 보다.

수명을 다한 보트들이 저렇게 놓여 있었다. 언젠가 그 과거 어느 날에는 저 녀석들도 마음껏 강물이나 해변을 돌아다녔겠지? 나이 마흔이 넘으니까 이젠 미래에 대한 꿈보다 죽음과 결말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그리고 나의 젊음이 나를 떠나고 마주할 초라하고 노쇄한 나 자신.... 그렇지만 그때도 여전히 나는 백발의 기개를 자랑하는 전사와 같은 모습을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외모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세르반테스의 알론조처럼 마음만은 활활 타오르는 용기를 가지며 지낼 것이다.

(피시 앤 칩스 식당)

이제 골웨이를 떠날 시간도 다가온다. 다시 더블린으로 가서 하루 저녁을 대기한 뒤,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한다. 흐린 날 숙소에서 바라본 골웨이의 전경이다. 흐릿한 화면이 제법 잘 그린 유화 같은 느낌을 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간절해진다. 떠나온 사람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된다. 이제 아일랜드를 떠나면 기네스를 생으로 먹을 일은 드물겠지?


-다음 편에 계속-


(댓글은 작가의 창작열을 불태웁니다. 죽는 사람 살리는 셈 치고 댓글 한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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