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 버티자!
여행에 있어서 스스로를 매우 박복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주님의 큰 은총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그 좁은 동네에서 아시안 마켓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진열된 신라면과 짜파게티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주여! 정말 감사합니다!"
시오반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보내고 그녀가 끊어준 티켓을 인계받기로 했다. 나는 단걸음에 숙소로 달려가 신라면을 끓어서 흡입을 했다. 이역만리 먼 땅에서 먹는 신라면의 맛을 가히 일품이었다. 김치가 없었던 게 아쉬웠지만 김치가 있었다면 다른 노란 머리 친구들에게 피해가 됐을 것이다.
아일랜드는 날씨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태양이 떠오르면 저렇게 일광욕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 보라! 금방 다시 흐린 구름이 찾아오지 않나? 우산을 챙겨가지 않은 나는 비를 맞아도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왼쪽이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남겼고 그 사람 외에도 아일랜드는 사뮈엘 베케트라든가...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유명한 작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나도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글이라는 것이 뭘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나에게 글은 출세의 도구가 아닌가 싶다. 갖은 자본과 재능과 학벌은 없지만 어찌 됐든 이것으로 발버둥 치면 소규모의 부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노름빚 때문에 엄청난 글들을 쓰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에게도 글은 그렇다. 자아실현이나 가치창조 예술적 표현은 나중의 것이고 재미있는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인세도 받고 강연도 하고 그래서 언젠가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에 내 삶의 결핍들을 청중들과 나누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킬베건이라는 아이리시 위스키다. 값이 참 저렴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위스키 가격이 팍팍 싸져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 주었으면 한다. 나에게는 스코틀랜드인 친구가 한 명이 있는데 그 친구와 위스키에 대해 쟁론을 한 적이 있다. 위스키는 아일랜드가 원조다! 아니다 스코틀랜드가 원조다!라는 주제로 말이다.
(제임슨 스타우트 에디션 : 흑맥주 통에 숙성시킨 위스키)
그런데 그 친구말로는 제임슨이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것은 맞는데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스코틀랜드인이라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로 넘어간 스코티시 두 명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친구말인 즉,
제임슨도 스카치위스키란다! 하하하! 유럽은 별 쓸데없는 거로 자부심을 부린다.
골웨이에도 밤이 찾아온다.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밤에 라이브 공연이 있는 펍에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거리를 거닐면서 가고 싶은 펍을 물색해 두었고 가뿐한 마음으로 펍으로 향했다. 잼미니들을 걸러내는 가드형을 지나 펍안으로 입성하자 한국하고는 많이 다른 펍문화가 보였다. 한국에는 그냥 뭐랄까? 음탕하고 퇴폐적인 게 전반적인 느낌이었다면(가본 적 없음. TV나 영화로만 봤음.) 이곳에서는 공연을 보든 모든 사람이 흥에 겨워 있었다. 술을 마시고 만취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곳에서의 흥을 즐기는 게 목적으로 보였다. 어떻게 옆에 앉은 여자 잘 꼬셔서 음흉한 목적을 채우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나는 늦은 저녁에 맥주를 먹으면 골이 아플까 봐 콜라를 시켰고 바텐더 청년은 보드카를 몰래 섞는 척하며 나를 놀렸다.
거기 있는 관중 모두가 떼창을 했다. 라이브 가수 두 사람은 꽤나 실력이 있었고 사람들을 흥겹게 했다. 아는 노래도 나왔다. 바로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곡이었다. 노래가 흘러가고 흥이 흘러가는 가운데 옆에 앉은 커플과 대화를 했다. 남자는 아일랜드인이었고 여자는 브라질인이었다. 축구는 또 만국의 공통 언어 아닌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브라질 플레이어 '가린챠'의 사진을 보여주니 엄청 놀라며 밝게 웃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역시나! 손흥민 이야기였다. 공연이 무르 이어갈 때 즈음 마지막 곡이 나왔다. 아일랜드 밴드 크린베리스의 'Dreams'라는 곡이었다. 개인적으로 몇 소절을 알아서 다른 이들처럼 따라 불렀다. 그렇게 흥은 그 곡으로 마무리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엠프를 정리하면서 가수분 한 명이 나에게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해 줬다. 어깨가 으쓱했다.
그렇게 모든 공연이 끝나고 콜라 한잔을 맛있게 비운 후, 사람이 없는 골웨이의 골목을 걸었다. 이제 곧 한국으로 복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지... 사람이 별로 없는 늦은 시간의 골목은 참 적막했다. 그리고 그 적막한 길을 걷는 것이 가벼웠다. 이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아일랜드와의 안녕이니까 말이다. 돈을 좀 더 팍팍 썼으면 좋은 경험을 더 많이 했으련만 아끼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저렴하게 다니려고만 하다 보니 많은 경험을 못한 건 아닌가 싶었다. 인생의 반 가까이를 살아온 시간에 아일랜드라는 땅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금처럼 번쩍거리게 살지는 않았어도 쇠처럼 고물처럼 비록 찌그러지긴 했지만 단단하게 살았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며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다. 마음속으로 말해본다.
"잘 있어! 골웨이야!"
-에필로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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