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공간에서의 그날
그러니까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때 일이다. 나는 좋은 학벌이 있지도 않았고 배운 기술이라던가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없었다. 늘 말하던 대로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열정을 가지고 또한 밝은 미래를 막연히 꿈꾸며 공장으로 달려들었다. 치과 의료기를 만드는 공장이었고 영세한 업체였다. 관리자 포함 전 직원이 5명이었고 나는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라는 자부심에 일하는 곳이 비전이 없어도 불타는 열정으로 황소처럼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자는 우리들에게 회식을 하자고 했다. 근사하지 않은가? TV에서만 보던 사회인들이 불빛이 번쩍거리는 유흥가를 걸으며 그날의 피로를 푸는 모습들은 나에게는 언젠가 분명해보고 싶은 꿈과 같은 것이었다. 식사를 돼지갈비로 해결하고 여자가 접대를 하는 노래방을 가기 원했던 관리자는 우리들에게 강권적으로 그곳을 가자고 주장했다. 말이 주장이지 하급자들은 선택권 같은 것은 없는 시절이다 보니 무작정 끌려간 게 맞았다.
인테리어가 제법 화려한 노래방으로 갔고 그곳은 무척이나 비싸보였다. 나는 잠시 후, 우리 방에 들어올 아가씨들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평소 노래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기분 좋게 실력을 무척이나 뽐내고 싶었다.
십여분의 시간이 지나 두 명의 아가씨가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나보다 7~8살은 어려 보이는 여자들이었다. 술을 우리 직원들에게 따라주었고 농담도 하고 그랬다. 관리자는 말을 낮추며 은근슬쩍 그녀들의 몸을 만지기도 했다. 어디선가 돈을 낸 만큼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직원들은 호시탐탐 그녀들의 몸을 노렸다. 그렇지만 나는 당사자의 허락 없이 그녀들의 몸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당시 한 명당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돈이 한 시간에 5만 원이었으니까 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리기 원했던 직원들은 흡사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았다. 그런데 그 짓도 지겨웠는지 나만 빼고 모두들 흡연을 하러 갔을 때였다.
"아저씨는 왜 가만히 있어요?"
긴 흑발의 생머리를 가진 하얀 피부의 여자가 물었다.
"뭐가요?"
"아니... 일반적으로 손님들이 우리를 부르면 막대하기도 하고 허락 없이 몸을 막 만지거든요. 근데 아저씨는 안 그러네요?"
나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언뜻 생각난 질문을 그녀에게 했다.
"꿈이 있어요? 이 일 하기 전에 무슨 일 했었어요?"
"미용실 스텝으로 일했어요. 근데 일이 너무 힘들고 돈이 안 돼서 그만뒀어요!"
"그러면 이 일은 돈이 좀 되나요?"
아무런 편견 없이 물었다.
"아니요! 이 일도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못해서 어려워요."
그동안 노래방에서 하지 못했던 대화를 했는지 가짜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나에게 보여줬다. 마음의 긴장이 풀린 그런 예쁜 미소였다. 나는 마땅히 그녀에게 해줄 게 없어서 노래를 불러주기로 했다. 노래방 기계에 박정현의 '꿈에'를 입력했고 직원들과 다른 여자가 나갔을 때 그녀를 위해 그 곡을 불렀다.
"아저씨는 노래를 정말로 잘하네요! 가수 했으면 좋겠다..."
그녀의 칭찬에 머쓱해서 웃고 말았다. 그녀도 나도 당장에 돈이 필요해서 공장을 다니고 노래방 도우미를 한다고 생각하니 그녀를 유희적 도구를 바라보기보다 일종의 동지 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어요! 그리고 영화감독이 꿈이었어요."
"우와! 멋있다! 그러면 영화 스텝 계속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만뒀어요. 저는 성격이 유순해서 그 일과는 잘 안 맞는 거 같아서..."
"그래도 해봐요! 아깝잖아요? 나는 대학교도 못 갔어요."
당장에 필요한 돈 때문에 미래를 저당 잡혀 사는 그녀와 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하고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나는 노래를 그 안에서 불렀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직원들과 다른 아가씨는 들어왔고 이내 노는 시간이 끝나서 여자들은 우리를 떠나게 되었다. 머리가 길고 검은 생머리였던 그녀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진짜 웃음을 나에게 마지막으로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속의 입으로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도 꿈을 꾸세요! 나도 한 번 그래볼게요!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