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장의 도구
내가 말이야... 미군부대에서 일한 적이 있어... 뭐 번듯한 그런 직종은 아니었고 청소를 했단 말이다.
미군부대 안에는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종합병원도 있었던 말이지...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살던 26살의 나는 영어나 배울 요량으로 그곳에서 일을 하기로 했지...
물론 청소업체가 파견한 직원으로 미군부대 안에서 일하는 거야! 흔히 미군부대 안에서 직업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고 보면 된다. 정부에서 급여를 받는 정직원과 그리고 정부에서 급여를 받는 임시직 그리고 여러 용역업체들이 꿰차고 들어간 청소나 미화 시설 설비 학교관리 이런 것들이 있단 말이야!
물론 나는 당연히 용역업체였지... 그런데 난 그것도 좋았어! 왜냐하면 그걸 통해 난 영어실력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늘었거든! 그 미군부대 안이라는 사회를 면밀히 살펴보면 계급이 존재한단 말이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냐면 미군장교 미군부사관 미군사병 정부에서 급여를 받는 정직원 그리고 임시직 그리고 말단의 나 같은 용역직원 이렇게 나뉘어... 그런데 정직원이 되려면 방법이 있는데 임시직으로 들어갔다가 구직공고가 뜨면 지원을 해서 면접을 보고 그럴듯한 직업을 얻게 되는 거야!
우리 청소업체를 총괄하던 K라는 새끼가 있었어... 그 새끼는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다가 관리직 쪽으로 온 경우인데... 이게 가만 보면 신분상승을 한 경우잖아? 이 계급사회에서도 특히 한인들끼리 서로를 향한 하대와 무시는 존재하더라고... 정직원들은 미군들과 엄청 친하게 지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더라... 그리고 임시직이나 용역직원들을 존중하지 않아! 임시직들은 신분상승을 호시탐탐 노리고 용역직원들은 미군들의 하대는 참을 수 있는데 정직원들이나 임시직들의 하대는 좀 못 참겠더라고...
'우리는 너희랑은 달라!'
이게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전반적인 것이었지! 특히 K! 이 견새끼가 아주 우리 팀을 도구로 보더라고...
말도 안 섞고 팔십이 넘은 우리 소장님을 막대하고 팀원들 및 청소 어머니들을 막대하더라고... 그 새끼 생긴 게 꼭 족제비 같았어... 청소일을 하다 보면 올바르게 청소를 못했을 때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골 아파져... 그게 반복되면 재계약이 힘들거든... 한 번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야외 외벽 계단의 천장을 청소하는데 사다리를 높은 것을 사용해도 닿지를 않는 거야... 단순히 호스로 물만 뿌리기에는 좀 한계가 있고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다.
팔십이 넘는 소장님과 70이 넘은 부소장님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무거운 나무 합판 두 개를 허술하게 못으로 연결해서 길게 다리를 만들어 턱 위로 올리고 못이 박혀있는 허술한 부분을 바로 내가 밟고 올라서서 천장을 닦자는 거야.... 역시 노인들 다운 생각이었어... 그런 분들 때문에 삼풍이고 성수대교고 다 나자빠지는 거지...
정직원 관리자 한 명이 그걸 지켜보더니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하더라... 소장님과 부소장님은 문제없을 거 같다는 말을 하고... 합판이 갈라지면 몇 미터 아래로 떨어져 버리면 화를 입는 건 난데... 그 상황에서 족제비 새끼가 충격적인 말을 하더라...
"우리 다치는 거 아니니까 상관없지 않아요?"
그 견새끼한테는 우리 청소업체 일원들은 그냥 도구에 불과했던 거야! 그 새끼의 머릿속에서는 노동자의 존엄 같은 건 없던 거지...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그런 말이 없던 2006년의 시절에 그 새끼는 분명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놈이 틀림없었어... 사람이 다치는데 우린 상관없다.... 항상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에 불편함 없는 동의를 하고 있던 나는 그 견새끼의 말에서 만물의 영장끼리도 계급화를 넘어선 도구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엿보고 공포를 느꼈지...
그 족제비새끼는 한국인 용역직원들에게는 말을 걸거나 미소를 짓지 않았어... 오로지 미군들 그중에서도 백인들 하고만 대화를 할 때만 따스한 미소를 보였지... 그 새끼는 신혼을 맞이한 가정의 남편이었고 곧 있으면 애가 태어날지도 몰랐지...
'저런 새끼도 결혼해서 아버지가 되고 남편이 되는구나!'
당시 내가 했던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1 더하기 1은 2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게 3이나 4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지... 그리고 그 족제비랑 사는 여자는 도대체 뭘 보고 쟤랑 살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불교에서는 인간계도 축생계 다음의 지옥으로 본다는데 일정 부분 동의가 되더라...
고지식한 소리일 수 있지만 난 다만 최선을 다해서 도덕과 이성을 추구하며 살려고 한다. 그걸 빼버리면 우리는 애니멀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거든... 그렇지 않아?
이성과 도덕.... 그리고 온정.... 난 반드시 가지고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