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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노 인생의 선생님들 생활기록부

역지사지

by 참파노

나의 인생에 있어서 참 아쉬운 점은 선생복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기억을 토대로 그들의 생활기록부를 간단하게 작성해 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박 선생 : 노년의 여선생이었음. 부잣집 애들은 환장하게 좋아하고 가난한 집 애들은 환멸 했음. 부잣집 아이들의 부족한 면모는 너그러이 웃어넘기나 가난한 집 애들의 실수는 분노를 담아 고사리 손을 내려침. 그때 나와 친구들 나이는 8세였음. 지금쯤은 아마 뒈졌을 거임.


초등학교 2학년 신 선생 : 늙은 할아버지 변태 선생이었음.

9살의 아이가 어찌하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지 잘 아는 듯했음. 손가락 뼈마디를 막대기로 내려친다거나 팔뼈를 짓눌러 고통을 주는 모습이 꼭 일제강점기 순사 노덕술을 보는 듯했음. 늘 강한 샤워 코롱 냄새가 났었음. 그리고 강제노역을 9살의 아이들에게 시키기도 했음. 역시 이 인간도 지금쯤 뒈졌을 거임. 연금 잘 받아쳐먹다 묘지에 누웠겠지...


초등학교 3학년 신 선생 : 인생 3 연타 노인네 선생... 나름 올바름을 추구했으나 아이들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것을 너무 좋아했음. 나머지는 그런대로 지낼만했음.


초등학교 4학년 최 선생 : 비교적 젊은 중년의 선생이었으나 역시 폭력을 자주 사용했고 폭언을 종종 사용함. 귀싸대기를 얻어맞을 적에 남자의 로션 냄새가 강하게 났었음. 자기 제자더러 미친놈이라는 표현을 했었음. 지금이면 교육청 민원대상임.


초등학교 5학년 김 선생 : 엄마와 같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음. 가난한 집 아이들도 마음으로 품었고 산수를 잘 가르쳐 주셨음. 대신 꼭지가 종종 도는 일이 있었는데 오락실에 가다가 발각되면 그날은 초상을 치렀음. 사랑이 참 많았던 선생님이셨음.


초등학교 6학년 김 선생 : 전라도 말투를 사용하며 편향적인 사상을 아이들에게 주입했음. 직접적인 폭력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자기 눈에 거슬리면 학급이라는 사회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그 학생을 매장시킴. 공정과 정의를 늘 말하는 듯 하나 잘 사는 집 아이들의 조공은 잘 받아먹었던 기억이 있음. 민중가요를 지겹게 배웠던 기억이 남.


중학교 1학년 김 선생 : 진정한 남자이자 선생님! 폭력을 사용하되 정의 구현을 위해서만 사용했음.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다 걸리면 그놈은 생을 마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음. 학업성취도에 민감해 성적이 떨어지는 애들을 많이 때렸음.


중학교 2학년 김 선생 : 과목이 수학이었고 여자 선생님이었음. 진심을 다해 수학을 가르치며 타성에 젖어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았음. 열의에 찬 모습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덕에 나도 제법 성적이 향상함.


중학교 3학년 김 선생 : 중학교 1학년과 동일.


고등학교 1학년 진 선생 : 과목이 수학이었으나 이 정도로 못 가르치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었음. 자기감정대로 애들을 다뤄서 마음을 상했던 기억이 남. 시절을 잘 타고나서 정교사가 된 경우 같았음.


고등학교 2, 3학년 정선생님 : 군장교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이었음. 학생의 환경과 재능 지적능력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평가 척도는 성실함이었음. 과목은 역사였고 요즘으로 일타강사 수준의 능력을 자랑함. 불량한 기질을 보인다거나 반항의 싹이 보이면 애초에 그 싹을 과감하게 제거함. 그래서 양아치 기질의 학생들 여럿이 고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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