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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Sep 07. 2020

나는야 용역직원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

오늘도 우리의 주인공은 일터로 향한다. 가봤자 인사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일터로 향한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집념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의 주인공은 용역직원이다. 일터의 주인공과 미화 어머니를 제외하면 모두들 대기업의 정규 직원들이다. 월급도 많고 복지도 좋은 대기업의 정규 직원! 듣기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우리의 직원은 파견 근로 업체에 속한 용역직원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객장을 방문하면 순서대로 번호표를 뽑아주거나 원하는 용무대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잘 안내하는 것이었다. 가끔 무거운 택배나 짐들이 오면 일터 안으로 허리에 힘을 줘 들어다 날랐고 객장이 더러워지면 청소도 종종 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이면 대빗자루로 주차장을 쓸었고 눈이 오는 겨울이면 넉가래를 들고나가 끙끙거리며 눈을 치웠다.
 
처음에 그곳에서 일할 적에는 우리의 주인공은 우리는 모두 한 식구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벽이 보였다. 높고 차가운 푸른 벽이 우리의 주인공을 가로막아 섰다. 가장 큰 고통은 노동에 비해 적은 임금도 아니었고 고객들의 진상 짓도 아니었다.
 
‘넌 우리와 달라!’
 
‘넌 이곳에서 소속감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를 하는 거야!’
 
이런 생각들을 주기적으로 깨닫게 하는 상황들이었다. 또래의 정규 직원들과 따뜻한 말을 해보고 싶었다. 주말에 있었던 일이나 고등학교 때의 일화들 내지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사소한 꿈같은 것 말이다. 어쩌다가 말이라도 섞는다 치면 전등 빛에 도망가는 바퀴벌레들처럼 날아가는 나의 말에 그들의 말은 구석을 찾아 숨곤 했다. 그때 느껴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절감은 참 아팠다. 우리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그런 상황들을 기대하고 기대했다. 자존심 같은 것은 내어버리며 때로는 굴종감 같은 것을 느끼며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주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끼리의 대화와 미소 속에는 차고 넘치는 온화함이 흘렀다. 때로는 그들과 따뜻한 대화를 하고 싶어 자존심을 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뿐 우리의 주인공은 여전히 혼자였다.
 
어느 순간의 이르자 소외감은 분노로 바뀌었고 때로는 불행이라는 사자가 그들의 방문을 두드리기도 바라는 못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있는 계급에 까지 우리의 주인공은 오르고 싶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나의 신분을 깨닫게 하는 기류들을 형성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오르고 싶은 내면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즈음 우리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늦은 나이에 이 세상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을 바라 본다는 것은 정말 우둔한 짓일까?라는 고민을 우리의 주인공은 하고 또 했다. 주인공의 허름한 근무복과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게 해주는 주인공의 급여가 나라는 존재를 말해주는 것일까? 그래서 주인공은 일터에서 따뜻한 온기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는 걸까? 주인공이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저들만큼 노력하지 않은 삶을 살아서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고민의 태엽이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이어졌다.
 

 
그렇게 주인공은 철저히 혼자가 되기로 작정을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길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기쁨의 방향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적지만 나에게는 급여가 나오지!’
 
주인공은 생각했다. 튼실한 대기업의 하청업체라서 급여가 밀려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주인공은 삶에서 주어지는 긍정을 찾기로 했다.
 
‘이번 달에는 급여가 나오면 조금 아껴 쓰고 에어 조던이나 사야겠다.’
 
‘에어 조던을 신고 강남이나 홍대를 걸어 보는 거야! 그러면 누구도 나를 패배의식이나 소외감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겠지? 어쩌면 근사하게 생긴 여자들은 나를 보며 설렐 수도 있을지 몰라!’
 
주인공은 그랬다. 정규 직원들은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주인공만 아플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결국 그의 긍정을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여전히 식사는 혼자 할 때가 많았다. 퇴근 후 식사 모임을 가지고 어디로 갈지 기뻐하며 식당을 정할 때 우리의 주인공은 짐을 꾸리며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주인공도 따뜻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등이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 순간에도 주인공은 긍정을 찾았다. 긍정을 찾기는 했지만 마음에 감당하기 힘든 소외감이 찾아오는 건 여전했다. 그렇지만 전과 다른 건 더 이상 주인공은 그 소외감에 자신을 내어주기로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얼굴에 슬픔을 보이거나 ‘나는 당신들이 주는 외로움으로 무너졌어요!’ 하며 역력한 기색을 보이는 것은 주인공에게는 죽음을 의미했다.
 
퇴근하며 오히려 밝은 웃음으로 식사 모임을 기다리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는 주인공이다. 그런 것이다. 누구도 외로움을 달래어 주지 않는다면 이 방법이 최고라며 주인공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달래어 본다. 그렇게 눈을 마주치지 않는 마지막 어른까지 밝게 인사를 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외로움과 슬픔을 다시 씹어 삼키며 일터를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그것을 씹어 삼킨다. 도시락이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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