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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Sep 01. 2020

냉장고와 요구르트

줄리앙은 한국인이었다.

줄리앙은 엄마가 없었다. 10살의 줄리앙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나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도 엄마를 한동안 만날  없이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10 즈음이었다. 그래서 줄리앙과 나는 엄청 빨리 친해질  있었다. 줄리앙의 몸에서는 항상 역한 냄새가 났고  아이들은 그런 줄리앙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줄리앙이 좋았다. 줄리앙의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 넘어 풋풋한 비누의 냄새를 나는 맡을  있었기 때문이었다. 줄리앙에게는 누나가 한 명이 있었고  누나는 우리보다 2살이 많았다. 가늘고 길게 뻗은 다리와 항상 웃는 얼굴의 줄리앙의 누나의 모습엔 항상 때가 묻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시커먼 때가 줄리앙의 누나에게 있는 곱디고운 미소까지는 더럽게 하지 못했다. 줄리앙의 누나의 얼굴에서는 항상 작지만 밝게 빛이 나곤 했다.
 
줄리앙의 누나는 육상을 했다. 육상에 소질이 있었던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육상부 아이들에게는 빵과 우유가 지급이 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줄리앙의 누나는 육상을 했던  같았다.
외모에서 보여지  줄리앙의 집은 가난했다.  번은 줄리앙이 자기네 집으로 초대를 해서 줄리앙의 집으로 방과 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개천에 있는 모래 위에 지어진 흙으로 만든 초가집이었고 화장실조차 따로 있지 않은 집이었다. 가스버너나 취사기구 혹은 전기밥솥과 냉장고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밥을 어디다가 해 먹어?”
 
내가 줄리앙에게 의아해서 물었다.
 
저기!”
 
줄리앙이 손가락으로 초가집 밖의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드럼통을 잘라 만든 화덕과 무쇠 솥이 있었다.
 
냉장고는?”
 
다시 내가 물었다.
 
우리는 냉장고 없어!”
 
줄리앙이 대답했다. 그때 줄리앙의 대답 속에는 전혀 부끄러움이나 어색함이 없었다.
 
반찬 없어?”
 
내가  물었다.
 
반찬은 그냥 그때 먹을 것만 해서 바로 먹어!”
 
줄리앙이 희죽 거리며 이야기했다. 나도 줄리앙만큼은 아니었지만 형편이 여유롭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날 나는 줄리앙의 모습 속에서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뜨거움을 전혀 찾을  없었다. 줄리앙의 그런 모습은 10살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가난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고 기뻐하는 것도 아니었다. 줄리앙의 모습에서   나는 만족이라는 행복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줄리앙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렴풋한 기억을 의존해 보자면 줄리앙의 할아버지는 매우 연로했던 노인이었고 따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을 어귀와 때로는 줄리앙의 마을 넘어 우리 마을까지 리어카를 끌고  파지나 고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줄리앙과 줄리앙의 누나는 수업시간에 항상 손바닥을 맞기 일쑤였다. 학용품을  돈이 없었던 그들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한 노년의 할아버지가 섬세하게 초등학교 아이들의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챙기기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이 된다. 그런 줄리앙과 줄리앙의 누나가 학용품을 잔뜩 마련할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운동회 날이었다.
줄리앙과 줄리앙의 누나는 정말 달리기가 빨랐다. 그래서 100미터 , 200미터, 계주 같은 것을 모조리 독식해서 상으로 공책을 타서 품에 한가득 들고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하루는 줄리앙의 누나와 , 줄리앙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가 학교가 끝난  같이 걸어가던 생각이 난다.
 
오늘 집에 가면 너희 들은 엄청 기쁠 거야! 할아버지가 엄청 좋은 것을 준비했거든!
너희들이 기분  만한 것을 준비했다  말이야! “
 
줄리앙의 할아버지는 길을 가며 연신  말을 내뱉었다. 줄리앙의 할아버지는   남매를 기쁘게  생각에 몹시 들떠 있었다. 나는 줄리앙과 그의 누나를 위해 할아버지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너무 궁금했다. 나는 그날도 줄리앙의 집을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독 따스했던  날의 햇살을 맞으며 줄리앙의 집으로 향했다.
 
뭐가 있을까? 완구 로봇?  신발? 아니면 돈가스가 있나?’
 
그렇게 나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지만 헛짓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흙으로 만든 초가집  부엌에는 당시 돈으로 50원짜리 요구르트 2개가 빨대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남매는 요구르트를 받아 들고 상당히 고풍스럽게 빨대를 꽂아 요구르트를 음미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10살의 나는 매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감당할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50원짜리 요구르트로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10살의 내가 아주 오래도록 그런지 아닌지 고민했던 주제였다. 그러던 어느  줄리앙과 그의 누나는 100 넘도록 학교에 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줄리앙과 그의 누나가 자던  서울에 살던 줄리앙의 친엄마가 내려와 줄리앙과 그의 누나를 할아버지 몰래 데려가 버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식으로 전학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줄리앙은 그곳에서 누나와 함께 속셈학원만 열심히 다녔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줄리앙은 전학을 가기 위해 학교를 찾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기뻤다. 어렸던 나였지만 이제는 줄리앙이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고 이제는 적어도 줄리앙이 살게  집에는 냉장고가 있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그리고 줄리앙이 50원짜리 요구르트가 아닌 햄버거나 튀긴  같은 것으로 기뻐할 해도 된다는 생각이 10살의 나에게 안심을 주었다.
 

 
서울에 사람 무지하게 많아! 사람에 치어 죽을 뻔했어!”
 
줄리앙이 나를 다시 보자마자  처음으로  이야기였다. 그렇게 줄리앙은 서울로 영영 떠났고 나는 다시 줄리앙을   없었다. 가끔 아주 가끔  녀석의 몸에서 나던 아주 역한 냄새가 그립다. 그리고  역한 냄새 뒤에 있던 비누냄새도 그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그리운   녀석이 던져주던 고민들이었다.
 
냉장고가 없어도 행복할  있을까? 50원짜리 요구르트로 행복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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