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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ug 19. 2020

삼립빵과 딸기맛 서울우유

사랑의 흐름

된장에 상추쌈의 맛을 알게  것은 비교적 이른 나이였다. 아마 여섯일곱  무렵이었을 것이다. 선택적 상황이 허락된 가운데 된장과 상추를 좋아하게  것은 아니었다. 딱히 선택할 다른 진귀한 반찬은 없었고  나이에도 식사는 반드시 해야 했기에 식사를 하려면 나는 된장과 상추를 먹어야 했다. 후에 비엔나소시지를 먹을 기회가 있어서 먹어보긴 했지만 나는 느끼함과 역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토하고 말았다. 설명대로 다른 여러 반찬 가운데 된장과 상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게 전부라고 말해도  만큼 선택의 여지없었기 때문에  된장과 상추를 먹으며 적응했고 좋아하게 되었다.
 
 나이 무렵 나에게 간식이라는 의미는 상당히 협소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과자를 수시로 먹거나 케이크나 바나나 같은 과일을 접한 다는 것은 정말 희박한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달콤한 설탕의 맛과 부드러운 밀가루 그리고  이외의 음료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거기서 대부분의 유년을 보냈고 청소년기를 보냈다. 우리 외할머니는   터에 있는 고추장 공장을 다니셨다. 거기서 나오는 급여로  많은 사람을 건사했다. 그중엔 나와 우리 누나도 있었다. 많지 않은 돈으로 여러 사람이 살아야 했기에 외할머니에게 절약은   자체였다. 절약하기 위해 의지를 발휘를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살았다. 이른 아침 일터로 외할머니는 일터로 향했고 점심을 지나 오후가 되어 잠시 쉬는 시간이 찾아오면 그때 달콤한 빵과 우유를 하나씩 받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것을 드시지 않고 챙겨 두었다가 저녁 해가 넘어갈  즈음 퇴근하며 가져오셨다.
 
그런 기억이 난다. 오늘은 할머니가 챙겨 오는 우유가  우유가 아닌 딸기 우유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마음 말이다. 어린아이의 이기심이란 그랬다.  간식들을 챙겨 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할머니에게 오후에 찾아오는 허기에 대해서는 공감할 능력도 마음도 없었던 것이었다. 저녁식사가  마룻바닥에서 모기향과 함께 시작된다. 역시 된장과 상추가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비엔나소시지보다 맛은 모를지언정 정말 먹기 편한 음식이었기에 마음을 놓고 먹을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음식을 입으로 넣으면서도 온통 관심은 외할머니가 손에 쥐고 있는 빵과 우유에 향해 있었다.
 
빨리 먹는 사람한테  빵 하고 우유를  거다!”
 
외할머니의 말이었다.  당시 외할머니의 양육방식이란 그렇게 투박했다. 빨리 먹고 치울  있게 해주는 사람에게  빵과 우유를 먹게 해 준다는  말이다. 우리 누나와 나의  신경은 빵을 향해 곤두섰고 우리는 빵과 우유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했다. 나의 기억을 의존해 보자면 내가 경쟁에서 이기는 날이 많았다. 이기는 날은 내가 빵과 우유를 독차지했고 누나가 어쩌다가 이기는 날엔 내가 울어 재껴서 외할머니가 우리 누나에게 압박을 가해 나에게 빵과 우유를 나누어 주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누군가의 양보와 사랑을 먹고 자랐다.
 
지금은 나이 마흔이 되었지만 삼립빵이나 딸기  서울우유를  먹지 않는다. 그때 맛도 나질 않고 그때만큼 빵과 우유를 향한 간절함도 없어졌다. 다만 무언가 간절한 것이 있다면 아직도 나를 향하고 있을  외할머니의 투박하고 고집스러운 사랑이  세계에 내가    있는 공기처럼 여전히 떠다니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  나에게  빵과 우유를 양보하시던 외할머니의 다리를 만져드릴 기회가 있었다. 세월의 인고들이 전부 외할머니의 발을 통과한 것처럼 우리 외할머니의 발은 너무 못생기고 지저분했다. 하지만 나는  살과 발바닥을 마음껏 주무르며 여전히 살아계셔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애타는 짐을 마음에 지고 살아가는 나에게 잠깐이지만 짐을 내려놓고   있는 순간이었다.
 

 
이제 예쁘지는 않지만 투박하고 퍽퍽했던 외할머니의  사랑이 나에게로 쌓여왔다면 다시 나에게서 외할머니에게로 부드러이 넘어갈 시간이   같다.  사랑을 넘겨드리는 시간이 오래오래되어 영원을 그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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