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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ug 04. 2020

카페인 없던 시절

잃어버린 것들

카페인이 주는 평안이 아닌 내가  스스로에게 평안을 양산하던 시절이 있었다. 국민학교 때가 그랬다. 그중 가장 평안했던 시간은 토요일 저녁 이불속에서 토요명화를 보던 때였다. TV 브라운관 넘어 보이는 미국이라는 세계는 나에게 행복의 나라  자체였다. 살면서 분명 그때보다는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의 평안을 절대 느끼지 못하고 사는  또한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평안을 느끼는 방법을 아예 상실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매미소리가 나는 저녁, 마루에 앉아서 푸른 나일론 모기장 안으로 타오르는 모기향 냄새를 마루 위에서 맡으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락함을 느꼈다. 토요일이었고 학교에서 가뿐하게 4시간만 수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맞이해주는  여유들이 나의 마음을 풍성하게 했다. 마을 이곳저곳을 훑으며 혹여나 굴러다니는 신문이라도 없나 확인하다가 TV프로 시간을 안내해주는 신문이라고 발견하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운동화 발로 번쩍번쩍 뛰다가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넘기며 오늘은 무슨 영화를 TV에서 틀어주나 기대하며 신문을 넘겼다. ‘터미네이터같은 명작이라도 틀어주는 날에는 극한의 기쁨에 어린 마음을 휘젓곤 했다.
 
그렇게 모기장 안에서 맞이하는 저녁은 어린 나의 모든 근심과 시름을 덜어주었다. 다른 아이들의 나이키 운동화도 부럽지 않았고 공부를 잘하고 잘 사는  아이들이 주고받는 손수 만든 생일 초대장이 부럽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 부러움들과 부끄러운 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옆에 외할머니가 있고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언제든 다가가 그들의 손을 잡으면 체온을 느낄  있었고 부드럽지 않은 손길을 느꼈다. 노인이지만 그분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세상 어떤 강한 것을 의지하는 것보다 안정감을 주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TV 보고 같이 환호하며 마음을 모으는 시간은 좀처럼 없었지만 유일하게  시간만큼은 우린 하나가 되었다.  그때의 안정감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느끼는 방법은 잊어버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그때의 안정감이  마음을 서서히 떠난  말이다. 여전히  웃고 여전히 울기도 하며 여전히 화나고 소리를 친다. 근데 그때의 마음은 아니다. 그래서 웃는  같지도 않고   같지도 않으며 화낸  같지도 않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그때의 비슷한 안정감이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같지만 확실히 그때의 안정감은 아니다. 그냥 흉내만 내지는 기분만 드는 것이다. 아쉽지만, 그렇게 생각하련다. 마음도 기계처럼 많이 쓰면 닳아버리고 고장이 나고 무뎌진다고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마음은 사용량이 한정이 되어있는데  시간을 사용하고  사용해서 닳아 없어진 마음의 공간에  무언가를 굴리니 굴러만 갈 뿐 안정감을 느끼는 방법은 상실해 버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냐며 스스로를 다시 한번 다그쳐 지쳐버린  마음을 혼내주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마음이 가끔은 기지개를 켠다. 무심결에 느껴지는 유년시절의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반응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문지의 기름 냄새나 아버지의 품에서 나던 공장 냄새 같은  말이다.
 

오늘도 애석하게 하루의 시작을 카페인을 때려 넣으며 시작하지만  좋지만은 않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마음이 자주 기지개를 켜도록 유년 시절의  어느 것들이 자주자주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날에 나타나 주었으면 한다.
 
당신의 마음도 그리고  마음도 기지개를  켜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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