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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ug 05. 2020

너에게 나를 보낸다.

14세 어른

1994년을 나는 기억한다. 14살이던 나는 무척이나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어른만 되면 청소년 관람불가의 영화를 언제고 마음껏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14살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비디오 가게를 가면 침을 꼴딱 꼴딱 삼키며 성인용 비디오의 제목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볼 뿐이었고 아직 아이의 얼굴을 한 내가 그것들을 빌린다는 것은 자살행위인 동시에 주인아저씨나 아주머니에게 큰 무안을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라 몸은 국민학생인 아이가 교복만 입었다고 시뻘간 딱지가 붙은 ‘젖소 부인 바람났네’ 같은 것을 들이밀며 빌려달라고 하는 상황을 말이다. 꿀밤을 얻어맞지 않거나 교복을 기억해 두었다가 전화를 학교로 하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던 우리 동네에 개봉관은 아니지만 극장이 하나 있었다. 개봉일보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영화를 틀어 주는 극장이었는데 동네에서는 그냥저냥 장사가 잘되는 집이었다. 그러던 우리 동네에 1994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영화가 하나 걸린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에 큰 이슈였고 또한 여자 주인공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방송 매체에서도 여러 차례 그 영화만 다루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영화는 없었다면서 나와 내 친구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우리는 우리의 나이를 원망했고 세상을 원망했다. 당시 어른들은 남녀를 따지지 않고 여유로운 웃음을 띠며 마치 지식인이자 선구자처럼 그 영화를 보고 토론 같은 것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에 그 영화 포스터가 붙는 날 우리 동네의 모든 중고등 학생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를 속이고 그 영화를 관람을 하느냐? 였다. 이미 2차 성징이 원활하게 진행되어 주민등록증을 받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생 형들이야 눈속임이 쉬웠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어중간한 그 어디 즈음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의욕은 너무나 강했고 반드시 그 영화가 상영되는 날 우리는 그 극장 안에 있기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우리는 여주인공의 나체를 반드시 보리라는 굳은 의지를 꺽지 않았다.
 
친구들과 머리를 굴렸다. 아버지의 신사용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향수를 좀 뿌리려는 녀석도 있었고 일부러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잔뜩 피워 몸에 담배 냄새가 나게 해서 어른인 척하려는 녀석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그냥 평소대로 캐주얼하게 입고 모자만 깊게 눌러써서 눈을 가려 주인아줌마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전략을 펼쳤다.
 
거사를 치르는 날이 되었고 방과 후 우리는 다들 약속 장소인 극장 앞에 어색하게 어른을 흉내 내며 모여 있었다. 그런데 한 녀석이 문제였다. 그 녀석은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았고 버스를 탈 때도 국민학생이라고 속여서 돈을 덜 내고 탔으며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도 엄마를 따라 여탕을 가던 녀석이었다. 그만큼 발육이 덜 된 상태의 친구였다. 우린 모두 그 녀석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 녀석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욕정이 불타오르는 수컷이었다. 마치 호랑이의 새끼도 호랑이이듯이 말이다.
 

‘만약에 들어가다가 아줌마한테 걸리면 우린 널 우리 친구 아니라고 할 거다.’
 
우린 입을 모아 발육이 덜된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 만약에 걸리면 난 깔끔히 포기하고 나도 너희 모른다고 할 거야! 그러면 너희는 무사히 들어가!’
 
우정이 차고 넘치는 대답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극장에 진입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고 난 본능적으로 우리 근처에서 우리와 같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징어 구워지는 냄새와 쥐포 구워지는 냄새 같은 것들이 점점 가깝게 느껴졌다. 드디어 우리는 상영관 입구에 들어섰고 아주머니가 위아래로 뜨는 스캔을 심장이 빠지는 심정으로 마주하며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의 양복바지를 입고 굵은 금목걸이를 차고 온 녀석부터였다. 녀석의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고 가뿐하게 무사통과를 했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아버지 담배를 훔쳐 핀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내가 숨 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아주머니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찰나가 한 시간 같이 흘렀다. 그렇게 우려와는 다르게 나 또한 무사통과였다. 이제 극장의 저 어두운 커튼만 통과하면 손에 원하던 걸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 같은 녀석이 문제였다.
 
“너 몇 살이니?”
 
주인아주머니의 질문 소리가 들렸다. 우리 셋은 신경도 안 쓰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고 내 어린아이 같은 친구는 예상했던 대로 그 자리에서 저지당했다. 하지만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녀석의 마지막 발악의 거짓말을 들어야 했다.
 
“19살이요.”
 
동요나 부를법한 아름다운 보이 소프라노 같은 아이의 목소리에서 나온 말이었다. 우리는 더 지체할 수가 없어서 얼른 극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끝내 그 녀석은 우리를 상영관 안에서 만날 수 없었다. 영화를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막상 어른들의 세계를 맞이하려니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영화가 이내 시작이 되었고 우리는 충격적인 세상과 조우하게 되었다. 감당하지 못할 것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고 뇌가 녹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는 시간을 가져버렸다.
 
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우리는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고 고개를 보란 듯이 세우고 갔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벌떼와 같이 우리에게 달려들어 우리의 무용담과 영화의 이야기를 온 정성을 다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침에 알았어야 했다. 반 아이들이 우리가 그 날 거기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달려들었는지 말이다. 나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그 날을 보냈다. 그 날을 마감하는 종래를 하는 시간에 앞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평소와는 다르게 박달나무 몽둥이를 들고 들어왔다. 내 마음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저 몽둥이는 분명 나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선생님은 시계를 풀고 재킷을 벗으시더니 와이셔츠의 소매 단추를 풀어 걷기 시작했다. 오금이 저렸다. 그러더니 우리 3명의 이름을 호명하고 앞으로 불러냈다.
 

 
“너희들 극장에 갔었지?”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
우리는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어떤 영화를 보았지? “
다시 선생님이 물었다.
 
“.....”
우리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 물었을 때 대답 안 하면 오늘 체벌의 양보다 2배가 늘어 날줄 알아라! 다시 묻는다. 어떤 영화를 보았지?”
다시 물었다.
 
“‘너.. 에... 게... 나를 보낸다.’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양복바지를 입고 온 녀석이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우리에게 엎드리라 말했고 박달나무로 사정없이 허벅지와 엉덩이를 내려쳤다. 끅! 끅! 하는 숨소리가 맞을 때마다 올라왔다. 나는 그렇게 매우 매질을 당하면서 그 어린아이 같은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은 재빨리 눈을 피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일렀구나!’
 
상황은 이랬다. 극장 주인 아주마니가 끊임없이 추궁한 끝에 우리의 학교를 알아냈고 그 소식이 선생님 귀에 들어갔으며 늙은 여우였던 선생님은 그 녀석이 그렇게 일을 혼자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 공범이 있을 거라 확신한 후 그 녀석을 다시 한번 추궁해 우리를 알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린아이 같은 녀석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우리랑 같이 상영관으로 못 들어간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아주머니한테 고초를 당하고 담임선생님한테까지 고초를 당한 생각을 하니 측은해졌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그 어린아이 같은 녀석을 절대 나무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그러운 어른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른 말이다. 어른.
 
 

오늘 문득 이 이야기를 꺼내어 생각하며 그때와는 많이 다른 어른이 되어버린 오늘의 나를 본다. 사람들을 향해 웃고는 있지만 쉽게 저 깊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용서의 기회를 타인과 나에게 잘 주지 않으며 질책을 더 잘하고 웃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버린 나 말이다. 1994년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보며 생각하던 어른은 이런 어른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1994년 몽둥이찜질을 실컷 당하고도 친구가 고자질했다고 미워하지 않던 14살의 내가 더 크고 더 이해심이 많은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에게 물어본다.
 
“어디 갔냐? 14살짜리 멋있는 어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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