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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ug 11. 2020

무전취식

사랑의 돈가스

무전취식을 해본 적이 있다. 8살 때였다. 그 나이 즈음해서 나는 돈가스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고 그것의 맛은 8살의 나에게는 세상의 어떤 음식보다 으뜸이었다. 두터운 고기의 풍성한 식감과 바삭함 그리고 고추장과 다른 소스의 맛은 8살의 마음을 풍성하게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분을 좋게 만들었던 것은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다는 기쁨이었다. 양식이라는 음식이 전무하던 우리 동네에서는 내 기억에는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을 먹는 곳은 그곳이 유일했다. 많은 기회는 아니었지만 돈가스를 먹을 적마다 마치 내가 TV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8살의 나에게는 그랬다. 직업이 마땅히 없이 음주만을 하던 아버지는 돈가스를 사줄 적에 아마도 지갑 없이 구겨진 돈을 돈가스의 가격에 겨우 맞추어 지불하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가끔... 아주 가끔 돈가스를 먹었던 나는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준다고 약속을 하면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하지만 이내 8살의 나에게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돈으로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주지? 우리 아버지는 직업이 없는데?’
 
8살이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는 걱정해야만 했다. 왜냐면 아버지는 말 그대로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소위 말하는 푸른색 ‘추리닝’을 입고 다니는 것이 참 싫었다. 그 옷은 아버지가 무직이라는 것을 단번에 말해주었고 또한 소주를 엄청 가까이한다는 것을 단번에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시기에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흰 셔츠에 타이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아버지들은 분명 땀을 흘려 일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는 부끄러웠다. 그런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준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나에게 충분히 불안감을 일으킬 만했다.
 
‘내가 이번 주에 돈가스를 사 줄 거야!’
 
아버지의 호언장담이 선언된 날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고 또한 불안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 선언을 거부할 나이도 아니었고 거부할 내면의 힘도 없었다. 그렇게 아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아버지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냥 기뻐하는 대로 두는 수밖에 없었다. 돈가스를 사 먹는 날은 점점 다가왔고 불안한 마음도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약속한 날이 되어 우리 부자는 나의 마을에 하나뿐이던 경양식집으로 향했다. 제법 내부가 근사하게 꾸며져 있었고 조명도 꽤나 도회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곳에 앉아서 돈가스를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좋은 회사원 아버지를 둔 아들이 된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유일하게 그 공간 안에서만 말이다. 적어도 그 음식을 먹는 시간만큼은 그랬다. 넓은 접시에 각종 야채와 과일로 모양이 꾸며져 있고 두툼한 돈가스가 소스와 함께 반짝거리는 빛을 내는 포크와 나이프가 놓였다. 그 빛나는 포크와 나이프가 나의 지저분했던 작은 손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식전에 나오는 흰색 수프는 어찌나 달콤하던지... 늘 먹던 된장국과는 달랐다.
 
아버지는 웃으며 나의 돈가스를 썰어줬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질서는 엉망이었지만 그 돈가스만은 질서 정연하고 가지런하게 잘라주었다. 속으로는 나도 TV 속 주인공처럼 내가 잘라먹고 싶었지만 그렇기에 포크와 나이프는 나에게 너무 컸다. 너무 기쁜 마음으로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이다. 나중의 걱정일랑은 마음속 한쪽으로 집어던져 버린 지 오래였고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아버지와의 따뜻한 시간을 기쁘게 보냈다. 아버지는 군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고 시나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기뻐 보여 나는 중간에 이야기의 흐름을 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를 기쁘게 해 주며 만족을 느끼는 아버지의 기쁨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삶에서 몇 번 없는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슬프고 아픈 추억이 만들어지는 것은 식사를 끝내고 난 뒤였다.
 

 
아버지는 나와 느린 걸음으로 머뭇거리며 계산대로 갔다. 아버지는 이내 용기를 잃어버린 듯 계산대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고 주인은 우리가 값을 치르기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여주인은 다그치듯 계산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채근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며 돈이 없음을 시사했고 목소리가 커져가는 여주인의 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살면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나 또한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상황에서 그냥 그렇게 부끄러움을 당해야만 했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던 것은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그냥 부끄러워도 고개를 들고 여주인의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냥 고개를 들었다. 여주인은 격앙이 되어 우리를 내쫓듯 밖으로 내보냈고 우리는 그렇게 값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무거운 추를 마음에 가득 달아놓은 듯했다. 8살의 마음은 그랬다.
 
밖으로 나오자 나와 아버지에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내 기억엔 바람이 정말 시원했다. 그 찬바람을 맞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돈가스 정말 맛있지 않냐? 아버지가 다음에 또 사줄게!”
 
나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굳어져 버린 양심이 미웠다. 미웠다. 부끄러운 순간이 지난 뒤 내 얼굴에 닿는 바람은 정말 시원했다. 그리고 다음에 이런 상황은 또 오지 않기를 난 바랬다. 그리고 오지 않았다. 값없이 아버지와 음식을 먹는 상황...
 
가끔 다 커버린 나는 생각해 본다. 아마 아버지는 돈가스를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려진 나름대로의 값진 음식을 기쁘게 먹는 모습을 보며 어깨가 으쓱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모든 부끄러움은 뒤로하고서라도 더러운 꼴이야 저 뒤로 해버리고 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쥐어짜 내 먹이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이제와 그냥 그렇게 단정 지어본다. 이제라도 그렇게 단정 짓지 않으면 다 커버린 내가 그분을 이해하거나 지금은 없는 모습을 감싸 안지 못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이 그랬다. 난 정의를 사랑하지만 그 정의가 우리 어머니에게 총구를 겨눈다면 우리 어머니의 편을 들겠다고 말이다. 난 그렇게 무전취식을 했던 아버지의 편을 들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때 말했어야 하는데 지금 속으로 이렇게 말해 보려 한다.
 
‘아버지! 아버지가 사 준 돈가스가 너무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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