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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ug 03. 2020

마주치는 눈빛이

박복한 나

사랑의 경험이라고는 짝사랑이 전부였다.   번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적이 없단 말이다. 이성을 보고 마음이 꿈틀거려 호감의 표시를 내었을  모든 이성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보였다. 난감해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고 때로는 역정을 내며 고개를 흔들곤 했다. 그리고 내가 짝사랑이란 것이 쉽게 빠지는 이유도 단순했다. 살면서 호의를 별로 겪어보지 않고 살았기에 조금만의 친절로도 금방 세상은 핑크빛으로 바뀌어 버렸다. 적어도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런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2003년이었나?  전역 직후 대학 등록금이라도 미리 마련할 생각에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시켜달라며 간청을  적이 있다. 운이 좋은 건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때 나이 23살이었으니까 이성에 대한 마음이   왕성할 나이였다. 군에서 접하던 여성 패션잡지들을 보며 이성에 대한 환상이 무르익을 대로 익었기에 23 인생에 이제 짝사랑은 종지부를 찍는다고 자부를 했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상태에서 같이 일하던 여자 아이를 만났다. 대부분의 이성들은 나를 일정 부분 경험한  거리를 두기 마련이었는데  아이는 나에 친절을 베풀었다. 흡사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가여운 콰지모도를 사랑해준 에스메랄다처럼 나에게 진심으로 웃어주고 마음을 다해 대화를 해주었다. 어느  자다가 일어나 침대에 누워 스스로 다시 짝사랑에 빠졌음을 자각하고는 이불을 걷어찼던 기억이 난다.
 
 시작이구나!’
 
그렇게 다시 한번 힘든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장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서 좋았다. 술집으로 서빙을 하러 가는 시간이 기다려졌고 가는 길이 상쾌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돈까지 번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게 되면 세상까지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이 이제 돌아보니 정말 맞았다. 나는 높은 의자에 앞치마를 두르고 앉았고  여자 아이는  무릎 언저리에서 소파에 앉아 때로는 나에게 기댔다.  허벅지에 존재의 의미가 부여되는 시간이었다.
 
너같이 천사 같은 아이가  같은 녀석의 무릎을....’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감정이 끝내 거절당하여 사라지는 시간을 늦게 맞이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여성들은 감각적으로  감정들을 눈치채고 마는 법이다. 이미   있었다.  아이가 나를 매력적인 이성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었던 것은  아이는 나에게 여전히 친절했고 여전히 다정했으며 여전히 나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안에서 짝사랑이라는 감정은 종잡을  없이 커지게 만드는 이유였다. 나도  이상은 접근하지 않았다. 나를 남자로 봐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같이 있는 공간과 시간을 즐겁게 여겼을 뿐이다.  입장에서 보면 남자답지 못했고 비겁했다. 마음이 유리처럼 깨지더라도 잠시 타오르는 불꽃같을 지라도 너에게 의미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아이의 주변을 쓰레기가 되어버린 위성처럼 맴돌며 다른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는  아이를 위로했고 격려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단념했다.
 
 

그렇게 둘이 어울려 다니며 눈이 많이 오던 새벽... 길을 걷다가 문득 용기를 내어 질문을 했다. 용기는 이미 멀리 도망쳐 버린 애원하는 듯한 질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냐?”
 
청춘 인생 최초의 대상을 향한 고백이었다. 하지만   안에는 당신의 유일한 의미가 되고 싶다는 단정적인 주장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말해버리고 나면 후회는 없을  같았다.  고백을 들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버스가  끊기고 다니는 교통도 없던  새벽 우리 엄마가 열어주는 문을 열고  아이와 나는 내방으로 들어갔다. 이성과 단둘이 같은 공간에서 밤을 맞이하는 최초의 경험이었다. 이곳에서 에로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그날   아이는 내가 귀하게 여기는 보석처럼 보여 다가갈  없었고 그렇게 대화와 잠결을 오가며 아침을 맞이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  아이는 여전히 거부한다는 사실에  자신을 보호하고자 단념이란 것을 해보았다.  한일이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나를 내버려 뒀다면 아마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나는 나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나는 단심 하는 가운데 원양어선을 타고 싶었고 거울 속으로 23살에게도 흰머리가 듬뿍듬뿍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를 길에서 마주쳤을  다리에 힘이 풀리는  여전했다. 지금 돌아보니 누군가를 짝사랑이건 서로를 향한 사랑이건 그때처럼 사랑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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