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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29. 2020

빈 깡통 속에 흔들리는 동전

변태들


학생 시절 국어과목을 가르치던 노년의 선생이   있었다. 정년 퇴임할 시기를 가까이 맞이한 선생이었는데 항상 엿가락만 한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조는 학생들의 머리를 중이 목탁을 치듯 후려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 하는 청아한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고 머리를 맞은 학생은 단발의 숨을 내쉬었다.
 
많이 아는 사람은 절대  지식을 티 내지 않아! 원래 조금 아는 놈이 안다고 자기 아는 것을 흔들어 소리를 내는 법이지!”
 
 노년의 선생이 하던 말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선생은 서울대를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노년의 선생이  말을 했을  내가 많지 않은 지식을 뽐내는 것을 들킨 사람처럼 마음에 철렁거렸고 모멸감 또한 느꼈다. 그때의 나로서  말을 생각하면  말은 맞는 말인지 모른다.
 
“하나 가지고 떠드는 놈은 가진 것이 그거 하나뿐인 거야! 그거 하나 가지고 자랑하는 법이지!”
 
그때의 나로서는 모멸감을 느끼며  말을 가슴 아프게 수긍해야 했을는지 모르지만 그때의 어른의 입장에 대해서 이제는 변명을 제법  만큼 머리가 자랐다. 변명을 해주고 싶고  노년의 선생의 말은 썩어버린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또한 모멸감을 안겨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 돌아보건대  노년의 선생은 자신이 가진 가치의 수준으로 자기가 힘들게 쌓아 올린 작은 지식을 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때로는 자랑하며 만족하고자 하는 소박한 사람들마저 짓밟아 버리는 잔인한 말이었다. 내가 지금에서야  노년의 선생에게 기대하는 바는 존중의 자세이다. ‘ 그것밖에 모르니 아는 척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잔인하며 폭력적인 마음의 태도를 버리고 ‘그래도 학생이  지식을 갖기 위해 노력했으며 작지만 빛나는  지식을 나는 존중하네..’라는 마음의 존중 말이다. 그렇게 뿌리진 가라지 같은 말들의 파편들이 때로는 나와 타인을 괴롭게 했던 적이 많았다. 타인보다 앎의 분량이 적은  같으면 나를 괴롭혔고 내가 타인보다 많은  같으면  사람에게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것이  노년의 선생의 과목 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많이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노인이 되었을  선생을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싶다.
 
선생님? 여전히 조금 아는 녀석은 조용히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세상의 석학이라도 모두들 적은 지식부터 시작하여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되고야  것이다. 그런 시절을 존중하며 귀하게 여기고  달려 나갈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 많은 지식을 가진 자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언젠가부터 지식을  마음 어느 곳에 축적을 하고  노년의 선생으로 배운  지식에 대한 태도가 정말  마음속의 가라지 같은 것임을 알고   누굴 지식으로 조롱하며 쾌감을 느끼는 변태와 같은 태도는 버린  오래다. 그리고 지식이 만연한 세상에서 어쩌면  다른 지식을 탐구하는 흥미도 버린  오래다. 귀찮다. 다만 내가  시간을 거쳐 마음에 배운 진정한 의미는  작은 지식으로 기뻐하고 자긍심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짓밟지 않고 존중하며 칭찬해 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었다.  작은 지식을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작은 지식을 가지고 기뻐하고 설레던  마음이  사람 안에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같이 좋아진다. 내가 배운  지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
 

 
오늘도  노년이 선생에게 묻고 싶다.
 
선생님? 선생님은 작은 지식을 가지고  듯이 기뻐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하던  없었나요? “
 
만약  노년이 선생이  질문을 듣는다면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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