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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27. 2020

화약총 도둑

그날의 기억

 
도둑질을 해 본 경험이 몇 번 있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인생의 도둑질은 장난감용 화약총을 훔쳐본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으로 기억이 된다. 나는 유치원을 가본 적이 없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 까지는 마냥 시간이 남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유일하게 나를 교육시키는 것이라고는 이른 아침에 하는 '뽀뽀뽀‘라는 TV 프로그램이나 'TV유치원 하나 둘 셋’ 같은 프로가 나에게는 유일한 학습의 통로였던 것이었다. 그 프로를 시청하는 시간이 끝나면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고민하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동네에 남아있던 아이들과 마음이 맞으면 모두들 읍내로 향해 걸어가곤 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도둑질을 계획했다. 목표는 화약총 세트였다. 햇빛이 잘 드는 신작로를 걸으며 우리는 설렜다. 길을 걷다가 아이들의 호흡으로 숨이 가쁠 때 즈음 구멍가게와 문방구를 겸해서 장사를 하는 집이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그 가게는 평상에다가 장난감들을 잔뜩 널어놓고 팔았던 기억이 난다. 주인아저씨나 아주머니는 미닫이문에 유리만 달아놓고 가끔 밖을 볼뿐 누가 물건을 집어 가지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널어놓고 팔면 아마도 광고효과는 아이들에게 가득했을 것이다. 엄마 손을 붙잡고 지나가는 아이들에 눈에 들면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떼쓰기 좋았을 것이니까!
 
우리는 구경하는 척 그 평상 앞으로 걸어갔다. 이것도 들어보고 저것도 들어보았다. 8 연발 화약이 작은 상자 안에 들어있고 그 상자와 화약총이 비닐 포장된 화약총 세트가 참 많았다. 우리는 구경하는 척을 퍽이나 오래 했다. 그리고는 차례로 윗도리를 들어 그곳에 화약총을 숨겨 긴장을 감추지 못하며 그곳을 걸어 나왔다. 손에는 땀이 쥐어졌고 머리는 쭈뼛쭈뼛 섰으며 등짝은 서늘했다. 자꾸만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뚫어져라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평안하게 도둑질을 해냈다.
 
나는 그때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태어나서 처음 느꼈는지도 모른다. 미안했으며 주인아저씨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고 그때 기억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누추해 보여 더욱 불안한 감정이 어린아이 마음속에 엄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언가를 공짜로 얻었다는 유쾌함도 잠시 마음속에 밀어내지 못하는 불안함과 미안함이 조금씩 커지더니 이내 가득 차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감정은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감정이었을 텐데 도화지 같은 순백의 마음만 가지고 있는 아이의 마음에 죄책감이라는 진한 먹물이 쏟아질 때는 울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울지 않았다. 아이들과 인근 놀이터로 이동해 애써 웃으며 비닐을 벗겨내고 화약총 안에 화약을 끼워 넣었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땅! 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신나게 화약총을 여기저기 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나는 총을 허공을 향해 겨눴다. 하지만 끝내 방아쇠는 당길 수 없었다. 태어나서 소리 나는 총이라는 것을 처음 쏴보는 긴장감이기도 했고 비록 도둑질로 얻은 물건이지만 함부로 쏴버린 다는 것이 아깝기도 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날 결국 총을 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 가게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로터리가 생겼다. 도로가 나서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더 크고 자라 가면서 그 길을 지날 적에는 내가 무언가를 훔친 장소라는 기억만 확연하게 날 뿐이었다. 참 애석하다 그 장소가 내가 무언가를 훔친 장소로 기억된다는 것이 말이다. 지금은 그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였던 내가 자라나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점점 준비되는 말이 마음속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인아저씨 그리고 아주머니 제가 화약총을 훔쳤어요! 아저씨 아주머니도 힘드실 텐데 제가 화약총이 너무 가지고 싶어 아저씨 아주머니 물건을 옷 속에 숨기고 그 날 도망쳤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금방 말하고 싶었지만 겁이 났고 다시 화약총을 빼앗길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
 
다시 로터리가 사라지고 도로의 포장이 나의 어린 시절처럼 벗겨 내지고 흙길이 생기며 그 자리에 다시 그 가게가 생겨서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그 미닫이 문안에 계셨으면 좋겠다. 가끔 그 유리문으로 밖을 내다보시곤 했는데 그곳에서 눈을 마주치며 용서를 빌고 화약총을 몇 개나 집어 사고 싶다. 그렇게 되면 아무 느낌 없이 기쁘게 허공에 대고 빵! 빵! 거리며 화약총을 마음껏 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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