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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25. 2020

소설-의로운 분노

묠니르

한 번은 회식이 끝나고 정직원들과 파견 용역직원인 내가 차를 마신 적이 있었다. 피아노가 있는 2층 카페였는데 늘 그렇듯 여직원은 여직원끼리 앉고 남직원은 남직원끼리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삶의 부를 어떻게 증식을 시킬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 갔던 것 같고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자녀들 자랑을 하기도 했으며 남편이나 집사람이 있는 사람들은 가정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했다.
 
“결혼하기 전에 같이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여직원 한 명이 이야기했다.
 
“맞아! 같이 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거 같아.”
 
다른 여직원이 맞장구를 쳤다. 순간 나는 필요 없는 고리타분한 도덕성이 순식간에 타올랐고 그 여직원들을 올바른 도덕의 세계로 인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혼전에 동거를 한다고? 혼전에?’
 
옆에 있던 자기 모습에 도취되어 살던 팀장 하나가 말했다.
 
“뭐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또 무언가 꿈틀거렸다. 선량하거나 상쾌한 마음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나이가 좀 있던 다른 팀장은 얼굴에 나와 같이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으니 여직원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같았고 나는 교육적인 이야기를 입 밖으로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여직원들이 두려웠던 나이 든 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했다.
 
“살다가 안 맞아서 이혼하느니 살아보고 헤어지면 헤어지고 결혼하면 결혼하는 게 낫지! 난 동거가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나의 안에서 의로운 분노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공통된 주제로 의견을 같이 하는 대화에 끼어들어 찬물을 뿌려주는 동시에 도덕을 그들 안에 심어주고자 하는 기회를 엿봤다. 호시탐탐 말이다. 나의 불편한 표정을 읽었는지 젊은 팀장이 한마디 했다.
 
“파노 씨 삶을 좀 유동적으로 살아! 내가 더 살아서 이야기하는 건데 삶은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야...”
 
팀장의 말에 마음에 의분이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는 나의 기백을 이 모두에게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이토를 쏘아 죽인 안중근 의사처럼 말이다.
 
 

“결혼이 이렇게 힘든 건 줄 알았으면 살아볼걸 그랬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러면 동거를 한다고 치자고요. 그렇게 동거하다가 안 맞아서 헤어진다고 치자고...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지? 새롭게 만나게 될 그 사람이 이전 사람보다 너무 좋아! 그래서 동거를 넘어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치자고요! 그러면 주임님은 이야기할 거예요? 새로 삶을 같이 할 사람에게 예전에 남자랑 동거했었다고 말입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몇 초간 우리 테이블에 정적이 흘렀다. 싸늘했고 다수로부터 미움의 감정이 나에게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내 여직원 둘은 동시에 목소리를 모아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같은 말을 외쳤다.
 
“파노 씨 미쳤어? 그걸 결혼할 남자한테 왜 말해?”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에서 전의가 타올랐다. ‘오냐! 오너라! 나의 적이여!’라고 마음으로 외쳤다. 그리곤 말을 이어갔다.
 
“결혼은 분명 크건 작건 사랑이라는 감정이 작용을 하는 겁니다. 맞죠? 그리고 사랑에는 이타성이란 것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그 이타성을 배제한 것은 이기심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더구나 결혼을 할 건데... ”
 
또 다른 나이 든 여성이 눈을 흘기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누구 좋으라고 이야기를 해! 그걸?”
 
나는 기회를 잡은 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대리님은 누구 좋으라고?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말에서 대리님은 분명 결혼할 상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그렇죠?”
 
여자 대리는 미간을 부들부들 떨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거 이야기하는 순간 결혼이 파투 나는데 그걸 굳이 왜 이야기 하나? 좋은 게 좋은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도덕관에서는 그 말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사랑의 작용에는 분명 이타성이 작용을 합니다. 더군다나 인생을 같이할 사람을 가방 사듯이 고를 수는 없죠... 어떤 무생물을 고르듯이 말입니다. 그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분명히 존중하고 또한 먼 훗날 나의 모르는 면을 알았을 때... 제가 말하는 건 그 동거를 모르는 면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맞이하게 될 감정 또한 생각해주는 것이 결혼할 상대를 배려하는... 즉 이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가 바득 바득 갈리려 했지만 참았다. 나의 말을 끊고 나이 든 여자 대리가 다시 논리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그걸 왜 이야기하냐고! 그 모르는 면을!”
 
나는 최대한 차분한 척하며 대답을 했다.
 
“세상에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리님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우리의 대화가 반복이 되는 것 같군요. 곧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아까 말한 이타성.... 즉 나의 모르는 면을 이야기를 해주고 결혼할 상대로 하여금 나와 함께하는 여생을 선택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자유의지를 발휘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결혼할 상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며 이타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가린 채 그 사람이 날 선택하도록 숨기고 가리는 게 있다면 그것은 사기꾼이요 칼 든 강도와 같은 것이지요.”
 
나는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어투를 최대한 흉내 내며 말했다. 여직원들의 표정은 분노에 눈 밑 살과 미간이 파르르 떨렸고 나를 반박해 주고 싶지만 뾰족한 대화가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여직원 눈치를 보던 팀장은 속이 시원하다는 눈치였고
젊은 팀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 파노 씨! 엄청 깨끗해서 좋겠네!”
 
한 여직원이 비꼬듯 이야기했다.
 
내가 논리도 밑도 끝도 없이 살아보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3명의 인간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
 
‘얘들아! 마블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에서는 히어로물을 만들어! 거기에는 여러 가지 초능력이며 첨단 장비를 이용해서 악당들을 물리친단다. 그 영웅 중에 토르라는 영웅이 있거든? 그 토르가 사용하는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 이름이 ‘묠니르’라는 망치야! 그 망치는 아무나 들 수 없어! 오직 고결한 자만이 그 망치를 들 수 있거든... 내가 생각했을 땐 너희들은 아무리 용을 쓰면서 그 망치를 들어보려 해도 그 망치를 들 수 없을 거 같다. 그런데 난 달라! 너희들을 보니 고결한 나는 왠지 그 망치를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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