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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22. 2020

딱따기

소설-귀싸대기의 추억

소년은 항상 고민했다. 하루에 주어진 100원으로 오락실엘 갈 것인지 아니면 군것질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에서 말이다. 오락을 하자니 입이 심심했고 군것질을 하자니 모험의 세계를 탐험할 수 없었다. 소년과 동일한 고민을 하던 아이들은 당시에 많았다. 오락과 군것질을 동시에 누리고 차지하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물론 둘 다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집이 좀 사는 아이들은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락과 간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일부 아이들은 간식을 제쳐두고 모든 동전을 모험의 세계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가운데서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하루에 둘 중 하나밖에 못하는 아이들 중 일부는 어둠의 양심과 손을 잡곤 했다. 그 어둠의 양심이 제시하는 방법은 ‘딱따기’였다. 휴대용 가스버너의 부품 중 점화할 적에 불꽃 역할을 하는 전기 도구였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도구만 있으면 오락을 마음껏 그것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도구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도구를 사용할 때는 보통 2인 1조로 움직였다. 한 명이 망을 보고 다른 한 명이 동전을 넣는 곳에 전기 불꽃을 튀기면 크레디트가 하나씩 올라갔다. 단 정말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만 했다. 오락실 주인아저씨에게 걸리는 날에는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지 걸려 봐야만 알았다.
 
소년은 딱따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았던 딱따기는 오락실의 시장경제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로 향하던 소년은 버려져있는 폐가전들 사이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발견했다. 소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것만 있으면 군것질도 하고 게임도 실컷 할 수 있어!’
 
소년은 온 재주를 부려 버려진 휴대용 가스버너를 해체하는 작업을 한 뒤, 딱따기를 쟁취했다. 드라이버가 없어서 힘들긴 했지만 딱따기를 향한 열정이 도구의 부재를 뛰어넘게 했다.
소년은 그날 순적히 학교를 다녀와서 같이 범죄를 저지를 동료를 포섭했다. 친했던 친구를 찾아가서 있는 사실을 털어놓고 가담 제의를 했다. 친구의 눈은 빛났고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다. 다음날 학교가 끝난 후 둘은 말없이 비장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을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준비된 100원은 망설임 없이 군것질에 투자했다. 붐비는 오락실로 들어가서 한 명은 망을 보고 다른 한 명은 전기 불꽃을 동전 넣는 부위에 튀겼다. 정말 크레디트가 오르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동전이 들어가지 않고 크레디트가 오르니 온 몸에 솜털이 섰다. 마저 한 방을 더 튀긴 후 둘은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에 임했다. 동전이 투자되지 않으니 더 재미있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 번만 게임을 한 뒤, 둘은 오락실에서 나와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이 좀 그렇지 않냐?”
소년이 물었다.
 
“응, 조금 이상해”
 친구가 대답했다.
 
“어떻게 이상한데?”
다시 소년이 물었다.
 
“그냥 주인아저씨한테 미안한데”
친구가 대답했다.
 
“맞아! 나도 좀 그런 것 같아!”
소년도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어둠과 결탁한 그들은 딱따기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다음날도 그들은 오락실로 향했다. 전날과는 다르게 과감했고 여러 차례 오락을 즐겼다. 어떤 기계에서는 한 번의 전기 불꽃으로 크레디트가 20개나 올라서 질리도록 그 게임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대화에서는 전날과 같은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멋지게 악당을 무찌른 무용담만이 있을 뿐이었다. 양심이 무뎌져 갔다.
 
3일째 되는 날도 역시 그들은 오락실로 향했다. 능숙하게 기계로 가서 불꽃을 튀기는 순간 갑자기 오락기계의 찬란한 화면이 붉은색으로 변해 버렸다. 순간 겁에 질리며 식은땀이 났다. 고장이 난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아주 큰 고장 말이다. 소년은 친구와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엄청난 죄책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밀려오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의지적으로 밀어내고 또한 마음의 구덩이에 파묻었다.
 
또 다음날이 되었다. 소년과 친구는 그날도 어김없이 자석에 이끌리듯 오락실로 빨려 들어갔다. 고장으로 여겨졌던 기계는 예상대로 꺼져있었고 고장이라는 종이장이 붙어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능숙하게 전기불꽃을 튀기고 둘은 오락을 했다. 그렇게 한 게임을 끝내고 다른 오락기계로 둘은 향했다. 한 명이 망을 보고 다른 한 명이 불꽃을 튀기는 순간 둘은 자신을 옆에 있는 다른 누군가를 느꼈고 또한 살기를 느꼈다.
 
“너희들이었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인아저씨의 손바닥이 소년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그 짧은 찰나 소년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볼을 스치고 갔지만 소년은 아무 감각이 없었다. 그렇게 주인아저씨의 손이 몇 번이고 볼을 후려치고 지나갔고 친구의 볼에도 날아들었다. 소년은 겁이 났다. 저런 강력한 힘으로 분명 자기 뺨도 후려쳤을 생각을 하니 그제 서야 볼이 아려왔다. 친구의 얼굴에도 아저씨의 분노의 손바닥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마치 부처님의 여래 신장처럼 말이다. 소년은 목구멍을 타고 들어오는 축축한 무언가를 느꼈다. 맛은 비릿했고 코로도 흘러나왔다. 코피였다.  옆을 보았더니 친구의 얼굴에도 이미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소년과 친구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난 뒤, 징벌을 멈췄다. 그리고는 두 아이의 멱살을 붙잡고 어제의 그 기계 앞으로 데려가 세워놓고 말했다.
 

“이거 너희들 짓이지?”
 
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코피가 흘러나왔다. 아저씨는 멱살을 놓고 아이들의 고개를 쳐들고는 손가락으로 오락기계위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먼지가 잔뜩 묻은 초록색 대형 회로기판들이 가득 있었다.
 
“저것들이 너희 같은 놈들이 고장 낸 기판들이다! 한 번 고장 나면 고치지도 못해 저게 얼마어치 인지 아냐?”
 
주인아저씨가 피를 토하듯 말했다. 그리고 이내 한 숨을 쉬었다. 두 아이들은 주인아저씨의 한 숨 속에서 깊은 후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때린 건 미안하다.”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소년의 마음에 있는 왠지 모를 무거움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짓 하지 말고 동전이 없으면 차라리 날 찾아와라... 그럼 동전 몇 개쯤이야 그냥 줄 거다.”
 
소년과 친구는 그 말속에서 죄 사함의 마음이 찾아드는 것을 느꼈다. 이내 아저씨는 카운터로 가서 동전 몇 개를 가져왔고 두루마리 휴지를 챙겨 왔다. 휴지로 아이들의 피를 정성스레 닦아 낸 뒤, 가장 재미있는 오락기에 동전 2개를 넣으며 말했다.
 
“하고 가!”
 
그리고는 동전을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부족하면 이걸로 더 하고!”
 
소년과 친구는 앉아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긴장됐지만 이내 오락을 즐겼고 오락을 하며 즐거운 마음과 이제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상쾌한 마음이 찾아들었다. 오락이 즐거운 건지 이젠 무거운 마음을 갖지 않아도 돼서 즐거운 건지 모르겠지만 죗값을 치르고 하는 오락은 너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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