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감
족구가 끝나면 아버지들은 늘 슬레이트 지붕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하지만 그 아버지들 가운데 우리 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어렸을 적 외가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자랐다.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그곳의 부모들은 서로가 왕래를 하는 가까운 지인들이며 형 동생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곳의 토박이가 아니었던 우리 아버지는 가끔이나 내가 사는 곳을 방문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남 그 자체였다. 때때로 그 아버지들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모여서 공을 차거나 족구를 했다. 멀리서 바라본 그들은 행복해 보였고 또 퍽이나 친해 보였다. 웃음기 가득한 가운데 그 아버지들의 아들들이자 내 친구였던 아이들은 아버지를 발판 삼아 그 자리를 매우 든든해하던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느꼈다. 단지 어린 시절의 나만 그 든든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상당히 큰 상실감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알았다.
‘우리 아버지가 저기서 공을 차고 있어! 다른 아버지들과 말이야! 우리 아버지도 멋지게 공을 찬다 이 말이야!’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그들의 안정감과 유대감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단지 나만 그 유대감을 상실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내가 더 탐냈던 것은 그 유대감보다도 그 아버지들의 어울림이 있을 후 마련될 자리였다. 그곳에서 아버지들은 슬레이트 지붕에다가 고기를 구웠다. 탄불을 피우고 그 위에 비스듬히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기름이 흘러내리도록 고기를 구웠다. 고기들은 제법 큼직하고 두꺼웠다. 그 고기들을 달궈진 슬레이트 지붕 위에 올리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릇하게 익어갔다. 약속이나 한 듯 그 아버지들은 소주를 나누었고 또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들을 바라보며 안정감을 느꼈다.
‘보라고! 우리 아버지도 사회와 우리 동네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단 말이야!’
내 친구들은 아버지들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그들만의 유대감을 공고히 했다. 단지 나만 그 유대감을 형성하기까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쭈뼛거리던 아이들은 고기가 제법 익어갈 무렵 그들이 아버지들에게 그들의 의사를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나도 고기 먹고 싶어!’
그런 말을 한 아이가 하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단지 나만 그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들 가운데 내 아버지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고기가 간절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구운 고기는 왠지 프라이팬에 구운 고기보다 더 맛있을 것 같았다. 고기의 맛이 나는 간절했다. 하지만 나는 먹을 수 없었다. 그곳에 내 아버지는 없어서였다. 나의 친구들의 그 아버지들의 허락이 떨어지면 모두 달려들어 그들의 풍성한 유대감을 느끼며 고기를 먹어댔다. 비참했지만 나는 유대감을 부러워도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슬레이트 지붕 위에 구워지는 고기를 더 간절히 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만약 그들보다 더 풍성한 유대감을 내가 소유했고 고기를 소유하지 못했다면 그 유대감을 팔아서라도 난 슬레이트 지붕 위의 고기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유대감도 고기의 맛을 느끼게 해 줄 그 누군가도 없었다.
“너도 와서 고기 좀 먹지 그래?”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아버지들 중의 한 명이 술이 발그레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이들은 이미 배가 불러 나무젓가락을 놔버린 상황이었고 나만 말없이 그 슬레이트 지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도 고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그분의 그 말 한 마디가 나의 몸을 더 굳게 만들었다. 결국 그 날, 나는 유대감도 없었고 아버지도 없었고 더욱이 용기마저 없었기에 고기를 한 점도 먹을 수 없었다. 유대감이 없고 그들 가운데 아버지가 없어서 속상해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무젓가락을 들고 슬레이트 지붕을 향해 달려들 용기가 없었던 나 스스로를 매우 원망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상실되어 살아왔고 커왔다. 그 상실이 되었던 감정이란 무엇인가? 바로 아버지와의 유대감이다. 난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나이에 나의 아버지는 일찍 떠나셨고 나는 그 상실감을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근데 참 재미있다. 그런 내 안에서 개발되어 버린 마음이 있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상실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제법 아팠다. 그래서 나는 나와 동일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사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래요! 아프지 말아요! 제가 그 감정을 대신해 드릴 순 없지만 나도 그런 적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며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난 유대감을 모른다. 하지만 유대감이라는 감정이 떠나가 버린 그곳에서 동감하는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