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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Dec 16. 2020

아가씨

주사가 싫다.

중학생은 주사가 싫었다. 그렇지만 감기에 걸렸을 적에 주사를 맞지 않으면 좀처럼 감기는 낫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도 어른들은 병원에 가면 진료를 보며 쾌유를 얻는 경우는 무조건 주사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중학생은 주사가 싫었다. 엉덩이로 묵직하다고 느껴지는 바늘이 엉덩이 살을 비집고 들어오는 기분이 무척이나 싫었다. 다른 종류의 진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반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아이가 샌드백을 치듯이 중학생을 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종류의 진통은 참을 만했다. 그런데 중학생이 살면서 겪는 주사의 진통은 세상 무엇보다도 불쾌했다.
 
그런 중학생이 감기에 걸렸던 날로 기억된다. 목이 째지는 듯 아팠고 몸은 무거웠다. 온몸의 근육이 욱신거렸고 가장 싫었던 것은 고열을 동반한 두통이었다. 두통이 어찌나 심하던지 우울함을 동반한 슬픔이 중학생의 마음까지 파고들었다. 중학생의 집은 위풍이 상당히 강했다. 방에 불을 때도 코가 시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불을 끌어안고 종일 감기를 상대로 투쟁을 해댔다. 병원에 가서 주사 한방이었으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냥 버텨보려 했다. 이러다 보면 감기가 떨어져 나가겠지 하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그렇지만 슬픔을 가져다주는 두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이불속에서 죽을상을 쓰는 손자를 보며 외할머니는 다짐을 하신 듯 자개장을 열어 옷을 챙겨 입으시고 지폐와 동전을 겸해 넣는 쭈글쭈글한 지갑을 챙기셨다. 장롱을 열적마다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찬바람이 중학생이 얼굴에 와 닿았다. 찬바람을 얼굴로 맞이하는 순간 그것이 중학생을 인도할지 중학생 스스로는 잘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손자를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옷을 챙겨 입으신 것이다.
 
“일어나! 의원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오자!”
 
어찌 들으면 냉랭한 외할머니의 말이 중학생의 귀에 들렸다. 싫었다. 두통을 이기고 몸을 일으키는 것도 싫었고 씻지도 않은 얼굴로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가는 것은 더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싫었던 것은 주사였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냉랭한 그 권유가 듣기 싫어 힘을 내어 몸을 일으켰다. 우리 마을엔 시외버스 회사의 종점이 있었다. 그 버스들이 운행을 하기 위해 터미널로 갈 적에는 마을 사람들을 공짜로 태워주곤 했는데 외할머니와 중학생은 100원짜리 한  닢이라도 아껴야 하는 집안 사정 때문에 그 버스를 자주 얻어 타곤 했다. 그렇게 골이 쪼개질 것 같은 두통을 몸에 지니고 중학생과 외할머니는 버스에 몸을 싣게 되었다. 중학생은 나이가 10대 중반을 향해 감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유독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혹시나 걷다가 반 친구 녀석들이라도 마주치면 다음 날 반에서 외할머니 손이나 잡고 다니는 녀석이라고 놀림감이 두고두고 될 것이 뻔했지만 그 날 만큼은 왠지 외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걷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타인의 따뜻한 온기를 얻기 않으면... 두통으로 인한 슬픔과 우울함이 마음을 떠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중학생과 외할머니는 병원을 향해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당시 중학생의 시내에는 크고 근사한 중대형이 막 생겼었다. TV 의료 드라마에서 만큼의 멋들어진 병원은 아니었지만 그것과 같은 분위기를 제법 내는 규모의 병원이었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주사실로 가기 전 왜인지는 모르지만 중학생과 외할머니는 진료비 수납을 하는 곳으로 먼저 안내되었다.
 
 

“돈은 있으세요?”
 
수납하는 곳에서 일하는 간호사복을 입은 어떤 여자가 묻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중학생과 외할머니를 짧은 순간 쳐다보며 왜인지 모를 짜증과 불안을 얼굴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중학생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초조하고 불안한 듯 그 여자는 키보드를 큰소리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돈은 있으세요?”
 
다시 한번 그 여자는 외할머니를 향해 묻기 시작했다. 묻는 다기 보다 따지거나 심문에 가까운듯한 말투였다. 그 말에 외할머니는 챙겨 온 지갑을 주머니에서 천천히 꺼냈다. 덩달아 불안해진 중학생은 외할머니의 지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얇고 가벼웠다. 불안했다. 그 여자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진다는 것을 중학생은 느낄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지갑을 열어 제대로 돈이 들어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중학생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중학생과 외할머니가 예상한 만큼의 돈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 예상을 한 참 못 미치는 돈이 그곳에 있었다.
 
“방법이 없을까요?”
 
문득 미안한 마음에 지갑을 이유 없이 주무르던 외할머니가 그 여자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매우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중학생은 그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매우 미인이었다. 잘 말아 올려 뒤로 묶은 머리는 단아했고 차분하게 잘 된 화장하고 가느다란 입술과 귀여운 눈매가 중학생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렇지만 그 여자와 중학생의 외할머니는 이런 불편한 대화를 중학생을 세워놓고 주고받는 중이었다. 중학생은 그 길게 느껴지는 짧은 시간에 돈이 참 밉고 싫었다. 계산을 못해서 돈을 챙기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챙길 수도 없는 돈이었던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며 그 짧은 시간에 돈을 싫어했고 미워했다.
 
“그럼 결정하세요! 주사만 맞고 갈 건지 약만 타갈 건지! 그 정도 돈은 되는 거죠?”
 
그 여자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는 신경질적인 듯 점점 더 커졌고 그 여자의 신경질 속에서 중학생은 중학생과 외할머니의 가난 아닌 가난을 경멸하는 말투와 표정을 읽었다. 그런데 그 여자의 그 짜증 어린 말의 내용이 중학생에는 기쁜 소식처럼 여겨졌다.
 
“할머니! 나 주사 안 맞아도 되니까 약만 타가! 나 이제 다 나았어!”
 
중학생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중학생은 안도했다.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약보다는 주사가 낫지! 그래도 감기가 뚝 떨어지는 거야!”
 
외할머니가 중학생을 보며 이야기했다. 주사를 안 맞아도 된다는 환희로 인해 두통은 잊어 버린지는 오래고 중학생은 다시 강조해 말했다.
 

 
“며칠 동안 약을 먹으면 감기가 서서히 가라앉을 거야! 주사 맞아서 안 듣게 되면 또 와야 되잖아?”
 
중학생의 고집과 설득에 외할머니는 수긍했고 그들의 대화를 들은 그 수납실의 그 여자는 재빠르게 어떤 종이를 출력해 주었다.
 
“조제실로 가세요!”
 
그 여자의 말에 외할머니는 일정 금액을 동전까지 확인해 지급하고 조제실로 향했다. 조제실로 가는 길에 중학생은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그 해방감이 마치 몸에 쾌유를 가져다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중학생은 그 여자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어서도 미인이고 미인이었던 그 여자의 얼굴은 또렷했다. 언젠가 그 여자를 길을 걷다가 다시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걸어가며 통화를 하는 중이었고 중학생과 외할머니에게 하는 말투와는 사뭇 다른 말투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표정도 그 여자를 더욱 미인으로 보이게 할 만한 표정이었다. 밝은 표정 말이다. 기억을 의존해 보자면 그 여자의 대화는 이랬다.
 
“그래! 엄마가 들어가서 맛있는 것도 만들어 주고! 또 책도 읽어 줄 거야!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엄마가 계속 옆에 있어 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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