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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Dec 30. 2020

전투

라면

윗동네 아이들은 항상 우리의 적과도 같았다. 어른들로부터 이어온 감정의 앙금이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 아랫동네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져 있었다. 윗동네에는 좀 지능이 모자라는 아이가 한 명 살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말이 어눌했으며 맞춤법은 아예 몰랐고 그냥 단순한 한글을 읽을 정도의 수준만 유지하고 사는 아이였다. 그 아이의 집은 꽤나 유복했다. 할머니부터 그 집의 부모들 형제들이 그 아이를 매우 사랑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윗동네에서 모든 아이들이 그 모자란 아이를 사랑해 주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 모자란 아이의 집이 소유했던 부를 우러러보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 가정에서 보이는 사랑이 우러러 보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윗동네 아이들은 그 부족한 아이를 감싸주고 돌봐주었다.
 
어른들로부터 이어저 내려온 감정의 골은 이유 없이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 아랫동네 아이들은 윗동네 아이들의 얼굴이며 이름은 알고 지냈지만 친구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랫동네 아이들의 눈에 윗동네 아이들은 불량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윗동네 아이들은 종종 몰려다니며 좀도둑질을 하거나 지나가는 다른 동네 어른들을 숨어서 골탕을 먹이곤 했다. 한 번은 골탕을 되게 얻어먹은 한 어른이 오물을 채워놓은 함정에 빠져 발을 찬물이 흐르는 개울가에서 쪼그려 앉아 씻은 적이 있다. 그것도 한 겨울에 말이다. 그것을 숨어서 지켜보던 윗동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입을 막은 채 웃어젖혔다. 어쩔 때는 숨어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콜록 거리며 열심히 담배연기를 흡입하던 아이가 있기도 했고 이미 담배에 통달을 하여 어른처럼 여유롭게 연기를 내뿜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윗동네 아이들은 아랫동네 아이들에게는 북괴와 다름없는 아주 민족의 문제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항상 그 윗동네의 그 모자란 아이를 골려주는 맛으로 살았다. 어렵게 쓰인 한글을 보여주며 제대로 읽지 못해 머뭇거리면 그 모습이 너무 즐거워 배꼽을 쥐어 잡고 웃어댔다. 주로 받침이 들어간 낱말이나 문장을 잘 못 읽었는데 그 모습이 여간 통쾌하며 즐거울 수가 없었다. 더욱이 말투까지 어눌하니 세상에서 그 보다 즐거운 코미디란 있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단어를 읽어보라 지시하면 아이는 끝내 부끄러움을 참치 못하고 울곤 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가 그 윗동네의 실제적인 힘으로 군림하는 가장 힘이 센 아이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나는 윗동네 아이들의 큰 표적이 되었고 제1의 제거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일부러 윗동네를 지나지 않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갔고 학교를 끝나고 돌아오는 길도 먼 길로 돌아왔다. 그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그 조금 모자란 아이를 다시 마주쳤다. 그냥 지나쳤으면 될 것을... 나는 골려주고 싶은 유혹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얼른 책가방을 열고 고학년의 국어책을 꺼내 그 모자란 아이에게 펼쳤다. 또다시 다가오게 될 고난을 직감한 그 모자란 아이는 곧 울상이 되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 이곳저곳을 보이며 읽어보라 지시했다. 여전히 아이는 받침을 읽지 못해 웅얼거렸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기뻐 그 자리에서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결국 그런 짓을 어린 날의 나 스스로는 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한참 웃고 있는데 별안간 코앞으로 바람을 가르는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며 누군가 내 멱살을 잡아챘다. 그 동네 아이 중 최고 권력자였다. 나는 현장에서 범행이 발각되어 즉결 심판에 쳐해 졌다. 그 윗동네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최고 실세 아이에게 무참히 구타를 당했다. 뺨도 맞았고 주먹으로 명치와 배도 맞았다. 명치에 주먹이 꽂히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길바닥을 뒹굴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무참히 보복 폭행을 당하고 억울했던 나는 그 길로 우리 동네로 돌아와서 우리 동네의 가장 강한 권력자에게 전후 사실을 말하지 않고 폭행을 당했노라고 일러바쳤다. 우리 아랫동네 아이들의 단합력도 윗동네만큼이나 끈끈했기에 그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윗동네에 보복을 해주기 위해 재빨리 모여들었다. 보복이라 해봤다 다 같이 몰려가서 그 윗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욕이나 실컷 퍼부어 주거나 분노에 차오른 아이 하나 둘이 엉겨 붙어 싸움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동네 아이들을 등 뒤로 나는 일등으로 윗동네로 걸어갔다. 우리가 쳐들어 올 것을 직감한 윗동네 아이들은 이미 다들 모여 있었다. 그런 충돌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은 사용하지도 못할 지게 작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얼굴을 보자 서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의 욕은 가히 창의적이다. 상당히 시적이며 묘사를 잘하고 창의력이 풍부하다. 그것을 뛰어넘기 시작하면 부모 욕이 시작된다.
 
그렇다가 우리 쪽에서 분노를 이기지 못한 한 아이가 준비해 가 새총으로 상대방 진영을 향해 돌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쪽에서도 날아온 돌을 직감하고 주위 조약돌 같은 것들을 들어 던지기 시작했다. 날아온 돌들이 철판 지붕과 슬레이트 지붕들을 때리며 퉁탕거리는 소리를 내었고 제법 전투와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욕과 함께 서로 맞추지도 못할 돌팔매질을 계속해댔다. 서로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돌을 던졌다. 해가 제법 넘어갔지만 누구 하나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돌과 함께 욕을 퍼부어 주었다. 아이들의 마음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달아올랐고 그 기분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그때 어렸던 나는 생각했다. 이 전세를 한 번에 뒤집어 우리가 이긴 자라는 것을 보여야만 했다.
나는 그 짧은 찰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지를 발휘했다. 길에 버려져 있는 박카스병을 집어 들고 고추를 꺼내 그곳에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제법 오줌이 차오르자 나는 그것을 들고 적진을 향해 비장한 심정으로 뛰기 시작했다. 겁은 없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오로지 나의 목표물! 그 모자란 아이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돌들도 두렵지 않았다. 적진에 거의 다 다다랐을 무렵 나는 박카스병의 뚜껑을 열고 그것을 모자란 아이의 얼굴에 냅다 뿌렸다. 순간 우리 진영과 적의 진영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줌이다!”
 
윗동네 아이 중 한 명이 패배를 직감한 듯 비통한 말투로 외쳤다. 오줌인 걸 알아버린 모자란 아이는 킁킁거리더니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 속에는 억울함과 슬픔, 분노 그리고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 울음은 동네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어린아이들의 전투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나타났다. 큰 거사를 치른 나의 입장에서도 나타나지 말아야 할 어른이 나타났다. 그 모자란 아이의 할머니였다.
 
“누가 우리 손주를 이렇게 울렸어? 응?”
 
그리고는 다가와 자기 손주를 쓰다듬어 안았다. 축축함을 곧 느낀 그 할머니는 자기 치맛자락으로 그 오줌을 닦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공포와 미안함과 수치심 같은 온갖 복잡한 감정이 마음으로 차올랐다. 이제 곧 나보다 크고 강한 어른은 나에게로 나가 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체벌을 나에게 가하겠구나! 그런 공포감이 나를 감쌌다. 그렇지만 나의 예상은 비껴나갔다. 자신의 치맛자락으로 오줌을 닦아 낸 그 할머니는 온화하게 주위 아이들을 둘러보며 웃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아! 장난이 이렇게 지나치면 어쩌냐? 그리고 친구들끼리 이렇게 놀면 못 써요!”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을 더욱더 큰 적막이 감싸 안았다.
 
“너희들 저녁은 먹었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방은 조용했다.
 
“할머니! 배고파! 라면 먹고 싶어!”
 
느닷없이 그 아이가 설움에 북받쳐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더욱 밝게 웃기 시작했다.
 
“라면이 먹고 싶어?”
 
할머니는 손주를 품에 안은 채 대답했다. 그 아이는 얼굴에 눈물 자국을 남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할머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희들도 다 먹고 가라!”
 
그 이야기에 아이들은 하나 둘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쭈뼛쭈뼛 서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내 할머니는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내 손을 잡아채 그 아이의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이 아이 저 아이에게 손짓하며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어색해하던 어린아이들은 할머니의 그 온화한 청을 거절할 수 없어 그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라면이 귀했던 시절의 그 라면이었다. 다들 그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우리를 그 집에 있는 큰 평상에 앉히고는  그 모자란 아이의 엄마에게 시켜 라면을 끓이게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큰 양은 냄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이 내어져 왔다. 할머니는 우리의 그릇에 라면을 일일이 덜어 주었고 우리는 좀처럼 재빠르게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미안함 때문이었다. 나는 라면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그 모자란 아이가 나에게로 다가와 나의 손에 젓가락을 쥐어 주었다. 이미 그 아이는 웃으며 그리고 그 얼굴에 가릴 수 없는 큰 만족감을 드러내며 라면을 씹고 있었다. 라면을 입에 넣기까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음식을 입에 넣으며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를 눌렀던 적개심은 사라져 버렸고 전투의 무용담만 남은 전우들이 되어 있었다. 그날 우리들은 어린들이 쌓아 올린 감정의 앙금을 우리들의 속에서 털어 버렸다. 그리고 웃으며 나에게 말하던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 손주가 좀 머리가 늦어! 그래서 글도 잘 못 읽어! 그러니까 네가 좀 틈 날 때마다 읽는 것도 알려주고 그래라! 알겠지? 사이좋게 지내고!”
 

그 따뜻했던 부탁이 나이 들어 버린 오늘도 잘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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