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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an 06. 2021

인스턴트

행복

누나? 빌렸어?”
 
8살의 동생은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뿐인 누이에게 물었다. 동생은 인스턴트식품이 먹고 싶었다. 인스턴트식품은 동생이 살던 마을에서는 구할  없었다. 왜냐하면 1988년의 동생의 마을에 ‘슈퍼마켓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홀로 돈벌이를 하는 곳에 찾아가면 맛있는 인스턴트식품을 먹을  있었다. 동생과 그의 손윗누이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은 둘째 일이었고 아버지가 인심을 베풀며 사주는 인스턴트식품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홀로 돈을 벌며 지내는 마을까지 걸어가려면 꽤나 걸어야 했다. 누이와 동생은 버스를 탈 줄 몰랐고 그곳에 가려면 오로지 걷는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만나면 아버지한테 크로켓 얻어먹고 나서 200 달라하면   같으니까 아버지한테 달라고 하자! 그렇게 아버지한테 받으면 누나가 누나 친구에게 갚으면 되잖아?”
 
  길을 걷기까지 동생과 누이는 무료할 것이 뻔했기에 둘은 간식을 마련해야만 했다.  간식은 정확히 7개가 들어있는 과일  캐러멜이었다. 상당히 획기적이고 신선한 간식으로 기억이 된다. 달콤한 버터 맛이나 땅콩 맛의 캐러멜의 전부였던 그때 과일 맛의 그것은 어린 동생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캐러멜을 손에 들고 아버지가 있는 곳까지 걷는 다면 동생과 누이는 힘들  같지 않았다. 동전  개가 없던 오누이는 결국 머리를 모으고 궁리를  것이 옆집 누이의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 누이는 자신이 없어 보였다. 별로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부끄러운 대화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부끄러움을 참아내면 아버지에게까지 가는 길이  풍성하리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마음 밑으로 숨기고 누이는 용기를 내어 걸음을 내딛고 옆집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이나 동생에게는 다름이 없었다.  길게 흘러갔다.
 
누나? 빌렸어?”
 
다시 동생은 누이에게 물었다. 누이는 보조개가 페인 볼을 보이며 웃었다. 수중에 200원이 생긴 것이었다. 둘은  길로 동네 가게로 향했다. 읍내에서   있었던 슈퍼마켓은 아니었지만 쇠로 된 선반 위에 이런저런 과자며 라면 같은 것을 허름하게 올려놓고 팔던 것이었다.  마을 아이들은 그곳을 신작로  쪽에 있었다고 ‘뒷 가게’라고 부르곤 했다. 동생과 누이는 뒷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과일 맛이 나는 캐러멜을 집어 들었다. 동생은 맛본 적이 없는 과일인 오렌지를 흉내 내는 오렌지 맛의 그것이었고 누이는 포도 맛이었다. 그것을 풍성한 마음으로 손에 들고 아버지의 마을까지 걷기 시작했다. 다른  손에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간식 없이  길을 걸었다면 동생과 누이에게는 고난의 행군과 다름이 없었겠지만   길은  사람에게는 소풍길이 되고 말았다. 캐러멜이 하나씩 줄어갈수록 아버지에게 다다르는 길은 점점  가까워졌다.  번은 누이와 서로의 내용물을 바꾸어 먹으며 맛을 평가하기도 했다. 동생의 입맛에는 누이의 포도 맛이 훨씬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정말 포도의 맛이  캐러멜에서 진동을 했다. 혀가 달콤해서 인지 불어오는 찬바람도 전혀 차갑지 않았다. 그렇게 맛을 음미하며 걷고 걸었다. 피곤하지 않았다. 캐러멜을 5개 먹었을  거의 도착을 했고 아버지의 퇴근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동생과 누이는 잠긴 방문 앞에 펼쳐진 평생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누나는  먹을 거야?”
 
동생이 물었다.
 
나는 비엔나소시지 먹을 거야!”
 
누이가 대답했다. 희망에 가득  어조였다.
 
“크로켓 먹으면  될까?”
 
위기를 느낀 동생이 애걸하듯 말했다.
 
?”
 
누이가 되물었다.
 
아버지가 돈이 없잖아? 그러니까 나는 크로켓이 먹고 싶고 크로켓은 누나도 좋아하니까!”
 
철저히 이기적인 생각으로 동생은 대답했다. 그렇지만  동생의 대답에도 어느 정도 매력을 느꼈는지 누이는 충분히 생각한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대문 밖에서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동생의 기억에는 아버지의 신발 소리는 유난히 컸다. 동생은 아버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술에 대한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다. 그것은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생과 누이는 인스턴트식품이 무엇보다 간절했다. 아버지를 보자 아버지가 반가운 건지  먹게  크로켓이 반가운 건지 마냥 반가운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예고 없이 자녀들을 보게  아버지 역시 자녀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오늘은  마시려고 했는데 너희들 때문에  병만 먹어야겠다.”
 
아버지의  말에 동생은 긴장되었지만  크로켓을 먹을  있다는 안도감이  긴장감을 덮어 버렸다.  사람은 손에 손을 잡고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슈퍼마켓은 뒷 가게와 확연히 달랐다. 판매되는 물건들이 훨씬 많고 다양했으며 물건들이 세련되게 진열되어있었다.  넓은 슈퍼마켓을 비추는 조명 또한 티브이에서 보는 것처럼  밝았다. 그곳에서 물건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부자가 되는 기분을 동생은 느끼곤 했다. 아버지는 투명한 색의 소주  병을 집어 들었고 동생과 누이는 약속된 대로 크로켓을 골랐다. 아버지의 단칸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없었다. 단칸방을 위해 마련된 부엌에서 아버지는 얼른 크로켓을 튀겨 왔다.  사람의 의미 있는 저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생과 누이는 버지의 눈치를 보다 크로켓을 손에 집어 들었다. 따뜻했다. 그리고 이내 입으로 가져가 베어 물었다. 달았다. 그리고 담백했다.  먹어왔고 먹어야만 했던 음식의 맛과는 정말 달랐고 월등히 뛰어났다. 그런 동생과 누이의 모습을 보며 흡족했는지 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동생은  날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가 과음을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고 그렇게 기쁘고 예쁘게  자리가 마무리될 거란 확신이 가득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날의  길지 않은 시간에 그들이 마음속에는 그들은 그들의 모습이 갈라져 있는 가정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엇 때문인지 과음을 하지 않았고 동생과 누이를 보며   없는 미소만 지으며 간간히 소주를 들이켤 뿐이었다. 그렇게 기쁘게 자리가 마무리되고 동생과 누이가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누나! 200 받아야지!”
 
속삭이는 말로 동생은 누이에게 말했다. 과일  캐러멜을 사기 위해 얼마를 융통을 했으니 그것을 갚아야만 했고 그것은 오로지 아버지에게서만 나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것을 얻어내는 역할은 오롯이 누이에게만 있었다. 그렇지만 어려운 아버지 앞에서  말은 누이도 쉽지 않은  보였다. 뭔가를 말하려는  누이가 아버지 앞에서 우물쭈물거리자 아버지는 눈치를   같았다.  때문에 기분이 졸은 건지 아니면 자녀를 봐서 좋은 기분인지는   없었지만 느닷없이 바지 주머니를 세차게 흔들며 동전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남매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게 뭐게?"


아버지가 웃으며 물었다. 그러더니 정확히 200원을 꺼내 동생과 누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집에 조심해서 돌아가고 학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
 
 하는 말이었지만 동생은  흘려듣는 말이었다. 공부 말이다. 그렇게 안도의 마음으로 제법 무겁게 느껴지는 동전을 하나씩 챙겨 들고 다시 지내는 집으로 동생과 누이는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머리 위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동생도 뒷걸음을 치며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걸음 한걸음 집으로 향했다. 동생과 누이는 아쉬웠다. 기쁘게 인스턴트식품을 먹기는 했지만 이제 한동안 다시 먹을  없을 것이고 지금 수중에 있는 동전도 엄연히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쉬움이라는 감정만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지울  없는 풍성함도 그들의 마음 안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동생의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손을 뒤적여 찾아보니 도착 전에 먹고 남긴 2개의 캐러멜이었다. 반가웠다.  번의  풍성함이 끝나고 찾아오는 아쉬움을 달래주는 단비와도 같은 2개의 캐러멜이었다. 동생은 길을 걸으며 다짐했다. 앞으로  어른이 되고  자라 가면서 삶의 곳곳에서 찾아오는 풍성함이 끝난  아쉬움이 스스로를 지배하지 않도록... 다가올 빈곤 같지 않은 빈곤이 자기를 지배하지 않도록 2개의 캐러멜을 남겨두는 삶을 살겠다고 말이다. 2개의 캐러멜을 아껴먹으며 동생과 누이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다시 한번 저녁을 먹고 흑백으로  티브이를 보다가 외할아버지가 때 주는 아궁이의 방바닥 굼불을 몸으로 맞이하며 누웠다. 동생은 생각했다. 오늘은 과일 맛의 캐러멜도 2가지나 맛보고 크로켓도 먹었다. 아버지는 술을 먹고 화내지도 않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옆에는 누이가 누워있고 방바닥은 따뜻하다. 행복을 느껴야만 하는 의무감은 없었지만 꽤나 행복했던 하루라고 여기며 동생은  풍성했던 마음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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