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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Feb 25. 2021

장티푸스와 장난감 총

긍정의 힘

장티푸스와 장난감 총
 
장티푸스 예방주사의 값은 5,000원이었다.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기억된다. 1988년의 5,000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장티푸스 주사를 맞기 원하는 아이들은 5,000원을 학교에 지불해야 했다. 반에서 일제히 돈을 걷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나의 가정에서는 5,000원이라는 돈은 마음을 먹고 마련해야만 하는 돈이었다. 그냥 언제든 엄마의 장롱 속에서 화수분처럼 나올 수 있는 돈이 절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그랬다. 그 돈은 정말 크고 풍성한 돈이었다. 그렇게 8살의 나와 엄마는 고민을 했다. 5,000원이라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말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햇볕을 쬐며 길을 걷고 있었다. 당시 내 마음은 가난도 절대 억누를 수 없는 왠지 모를 풍성함이 있었다. 그 풍성함이 언제고 8살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요동을 쳤다. 그래서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가난은 가난이었고 나는 철저히 나였고 그런 나의 마음은 곧 풍성함이었다. 그 풍성함의 이유는 그랬다. 가질 수는 없었지만 바라볼 수 있는 많은 장난감들 때문이었다. 문구사며 제법 큰 장난감 가게에 풍성히 진열되어있는 장난감을 보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부유함을 누리곤 했다. 소유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것들을 소유한다는 마음을 먹는 것은 우리 엄마에게 무슨 부담을 안겨주는 것인지 8살의 나는 뼈저리도록 알았기 때문에 소유에 대한 미련은 애초에 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소유하지 못함에서 오는 역설적인 풍성함을 누렸다. 그 장난감들을 바라만 보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봐서는 안 될 장난감을 보았다. 영화 ‘우뢰매’에 나오던 우리의 지구 용사 ‘에스퍼 맨’의 전자총인 ‘에스퍼 건’이었다. 조립을 해야 하는 장난감이었고 비비탄이 나가는 총이었다. 1학년이었던 내가 조립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던 고가이자 고난도의 장난감이었다. 나는 그 장난감 총을 소유하고 싶어 졌다. 그 충동은 신경과 세포가 반응하 듯 8살의 내 몸속에서 반응을 했다. 다른 소유욕처럼 버려질 성질의 소유욕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유욕을 붙들고 있으나 그 소유욕을 버리나 그 장난감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멋지게 에스퍼 건을 들고 있는 에스퍼 맨의 모습이 그 장난감 포장에 그려져 있었는데 그 진열된 장난감을 볼 적마다 나의 심장은 요동쳤고 혹여나 나보다 누가 먼저 그 장난감을 선점할까 봐 의미 없는 조바심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장난감의 가격은 정확히 5,000원이었고 장티푸스 주사의 값과 동일했다.
 
5,000원은 엄마와 내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쉽게 굴러들어 왔다. 우리 엄마의 오랜 친구가 우리 엄마를 만났다. 그 아주머니는 내가 보기에도 화려해 보였고 부자처럼 보였으며 멋진 지갑을 손에 들고 있었다. 우리 엄마의 아들인 나를 본 아주머니는 엄청 나를 귀여워했고 곧 지갑에서 갈색 지폐를 꺼내 나에 두 손에 안겨주었다. 그 지폐가 손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가슴이 떨렸다. 더 이상 소유욕이라는 것이 나의 헛된 희망이 아닌 것임이 확증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내가 사랑했던 그 장난감을 문구사에서 사리라고 다짐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꿈이 물렁거리듯 손에 쥐어졌다.
 
“장티푸스 주사 값으로 내면 좋겠지?”
 
 

그날 저녁 엄마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멘트가 물에 굳어지듯 가슴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요동쳤던 소유욕이 저지당하니 불안한 기분까지 들었다. 8살의 나는 엄마에게 고집을 피우고 싶었다.
 
“나 장난감 사야 돼”
 
나에게 그 돈으로 장티푸스 주사를 맞으라고 권하던 엄마의 모습이 꽤나 슬퍼 보였지만 난 그 슬픔을 외면하고서라도 장난감이 가지고 싶었다. 장티푸스 주사는 자율적으로 맞을 수 있었다. 무조건 반의 모든 아이들이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갈등의 여지를 두지 않고 다들 순조롭게 5,000원을 납부했다. 그렇게 늦은 저녁 엄마와 5,000원의 방향을 두고 고집을 피우던 나는 끝내 엄마의 슬픔을 이기고야 말았다. 엄마의 슬픔이 주는 낙심보다 에스퍼 건과 함께할 나의 날들이 더 빛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티푸스 주사 안 맞을 거야?”
 
다음 날 노년의 담인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때 반 아이들은 모두 책상에 앉아있었고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 맞을 거예요!”
 
나는 장티푸스가 걸릴 것 같은 두려움 따위는 저 뒤로 던져버리고 노년의 담임선생에게 씩씩하게 말했다. 그리고 모든 일과가 끝난 그날 나는 그 문방구로 단숨에 달렸다. 달리는 순간에도 손에 땀이 났다. ‘혹시 누가 먼저 사간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문득 불안해하기도 했다. 얼른 문방구로 뛰어 들어가서 장난감을 집어 들고 갈색의 지폐를 주인아주머니에게 지불했다. 그것을 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따뜻했다. 상상으로만 느끼던 풍성함을 직접 만지며 돌아오는 길은 긴장감을 주기까지 했다.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엄마에게 되돌릴 수 없는 불효를 한 것 같기도 했고 우리 가정 형편에 대못을 박는 못된 짓을 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에스퍼 건인데!
 
결국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 장난감 총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조립이 저학년인 나에게는 고난도였으며 더러 불량으로 나온 플라스틱 부품도 있었기에 나에게 완성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비록 방아쇠가 당겨져 발사는 되지 않지만 본드로 붙여 총의 모양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총을 한 손에 들고 볕이 쬐는 우리 동네 길을 에스퍼 맨이 되어 달리고 또 달렸다. 입으로 빵!이라는 소리를 내야 했지만 어떠한가! 에스퍼 건인데!
 
1988년 그 해, 나는 다행히 예방 주사가 없었어도 장티푸스에 걸리지 않았다. 내 인생에 마음의 긍정적인 힘이 질병을 물리친 우수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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