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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Mar 24. 2021

전능자

여호와는 예수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영존이라고 한다. 인류가 살아온 이후로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소망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이룬 인간은 결코 없다. 간절히 소망한 만큼 그리고 그것을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만큼 그 바람들은 녹아드는 눈처럼 그냥 더욱 의미 없이 그것을 소망하는 인간들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 슬프고 아쉬운 것은 그것을 간절히 소망했던 자의 마음을 인류는 모르고 외면한 채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스스로만의 영원을 소망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부활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종교에 대한 강요도 아니고 더욱이 포교는 더욱 아니다. 함께 생각하자는 말을 하려 한다.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인류가 본 일은 딱 한 번 있었다. 그것은 예수의 부활이었다. 당장 브라우저를 켜고 구글에서 자료를 찾아 예수의 부활을 부정할 수 있다면 이 글을 읽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부정하고 또 부정해 봐도 부정될 수 없다면 이 글을 읽어내려가며 같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지 가만히 권해본다.

 

그런 일은 이미 역사에 있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 말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버리며 이 세상에는 있지 않은 유기체로 자신의 사람들에게 보였던 일 종교적 색안경과 학습을 철저히 배제한 체 그 사건을 바라본 다면 의외로 종교적 학습을 해왔을 때와는 다르게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이 보다 더 선명해질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이사야서의 예언은 하나님 자신이 한 아기의 모습과 한 아들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올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사야서라는 성경의 책은 충분히 종교적 색채가 다분하지 않으냐 반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있지 못할 일이 사실이라면 저 글은 사실적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 저 글에서 영존하시는 아버지! 즉 전능자가 한 아기로 인간의 육체를 입을 것을 말하고 있다. 영존하신 아버지의 속성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죽지 아니함이 있고 영원함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생겨난 이후로 인류의 간절한 소망의 그의 안에 있다. 이사야서를 포함한 구약의 이야기들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제는 신앙인들조차도 진부하게 여기는 즉 ‘메시아’에 대한 약속에 관한 이야기 들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2~4

 


자신이 선택한 한 실제적인 인간의 혈통을 통해 오겠다는 큰 약속을 구약의 책 모두는 말하고 있다. 영존하신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인간이 되어오겠다는 절대적인 약속을 구약 내내 약속하고 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모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2

 

하나님이 스스로가 인류에게 인간으로 와서 영원히 존재함을 보이겠다고 한 그 약속! 그것이 복음이고 전능자의 약속이다. 그 영존함을 보일 수 있는 절대적인 사건이 바로 부활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태초부터 있었던 인간의 된 하나님이라고 예수는 말한다.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3:19

 

그렇다면 내가 태초부터 있던 그 전능자라고 예수는 말하는데 그 전능자를 누구라고 지칭해야 함이 옳을까? 태초부터 있던 하나님 그 자체인 영존하신 아버지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성자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전능자 자신은 구약에서 자신이 사람의 몸으로 가는데 자신을 영존하신 아버지이자 하나님 그 자체라고 했다.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 그 자체라고 전능자는 말했고 계시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어받은 신약 시대의 기자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수용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립보서 2:6

 

나는 지금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신학이 전하는 이야기 인간이 만든 교리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성경이 전해주는 의도를 말하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이해할 때 그 대화의 거시적은 이해 안에 미시적인 이해가 있다. 미시적인 이해가 거시적은 이해를 앞지를 수는 없다. 내가 말한 예수의 의도를 듣는 자의 입장에서 파악을 해 볼 때 예수는 과연 자신을 다른 모습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주길 원할까? 아니면 전인적인 하나님 그 자체로 받아들여 주길 원할까? 그리고 왜 인간은 그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만 할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한복음 8:24

 

 


사람이 된 전능자는 자신 스스로 즉,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영원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었다. 태초에 세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그 본체가 자신인 것을 이해하길 예수는 원했고 바랬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들 때문에 태초부터 하나님의 아들인 성자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를 얻을 수 있는 미시적인 이해로 거시적인 이해를 덮으려는 것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35

 

아들이라 지칭받는 순간이 있다. 전능자가 아기가 되어 사람이 되는 순간! 그 순간부터 아들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때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전능하신 그리고 영존하신 아버지이자 하나님인 것이며 사람이 된 하나님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류에게 ‘내가 그니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태초의 계신 전능자로 육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영으로 존재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이 그 영의 말이고 그 말이 곧 그 영이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 말 그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이다. 그 어떤 사람을 알고자 할 때 그 사람의 언어가 곧 그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말씀이신 전능자가 육체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 스스로가 전능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태초에 있는 전능자 하나님 그분이 육체로 오신 분이 예수이다. 그 영존성을 보이기 위해 육체를 입은 예수는 부활을 인간들에게 보였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이 글에서 종교적 색채가 느껴져 거부감이 든다면 다시 한번, 브라우저를 열고 구글로 부활을 부정해 보길 바란다. 또한 예수는 자신이 인간의 혈통을 따라 내려온 전능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또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사자를 보내어 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6

 

태초부터 있는 뿌리인 전능자가 인간의 몸을 입고 동시에 자손이 되었음을 말한다. 결국 결론은 하나인 것이다.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 한 사람이 된 것, 그것을 인류가 알아보도록 일으키신 사건!

그것이 바로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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